더 커진 위협, 자유세계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배틀그라운드(허버트 맥마스터 지음, 교유서가 펴냄)
前 백악관 NSC보좌관 지낸 저자
미 외교·안보정책 반성·분석 통해
北·中·러·중동 등 대응전략 담고
경험에 기반한 미래전략 수립 역설
한국의 '햇볕·달빛 대북정책' 비판
러·中 위협속 한미일 공조 강조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을 나서며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누가 올림픽을 ‘평화의 축제’라고 했던가. 다음 달 4일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베이징은 개막도 하기 전에 이미 각국의 편 가르기와 힘 겨루기의 장으로 전락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인권을 문제 삼아 올림픽에 대해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하자 영국, 호주, 일본 등이 동맹의 결정에 동참했다. 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무력으로 우크라이나를 인질로 잡아둔 채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밀월을 위해 베이징으로 날아간다. 그간 숨죽이고 있던 세계 각지 독재자들도 바빠졌다. 강대국 간 힘의 균형이 깨진 틈을 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새해 들어 벌써 다섯 번이나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2017년 2월 20일 허버트 맥마스터 미 육군 중장이 플로리다 팜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백악관 외교안보보좌관 자리를 제안 받은 후 악수하고 있다./AP연합뉴스

국제사회 긴장감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국내에 번역 출간된 허버트 맥마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배틀그라운드(Battlegrounds)’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반성과 분석을 다루지만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책이다. ‘혈맹’ 미국의 대외 정책은 한국의 핵심 이익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맥마스터는 직업 군인이자 정식으로 교육 받은 역사학자다. 전쟁 현장 경험 5년을 포함해 34년 동안 군에 몸담았고, 2017년 2월부터 2018년 4월까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았다가 정책 이견 등을 이유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트윗 경질’을 당했다. 맥마스터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도전을 앞두고 책을 낸다는 소식이 워싱턴 정가에 전해지자 민주당은 기대감을, 공화당은 우려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맥마스터는 트럼프 정부 인사들의 폭로 행렬에 동참하지 않고 책을 통해 ‘미 육군 지성’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는 책에서 군 복무 중 전쟁 수행 경험과 백악관 재직 중 맞닥뜨렸던 외교적 갈등과 논의, 결정의 과정을 냉정하게 복기하고, 미완의 문제를 진단한다. 단지 트럼프 정부의 외교 안보 실책을 비판을 하는 게 아니라 역사적 맥락에서 오늘날 미국이 ‘진정한 힘이 결여 된 외로운 초강대국’이 돼버린 이유를 찾고, 지역별 외교·안보 정책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분석한다. 그는 반성이 필요한 옛 경험이야말로 미래 전략을 세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우크라이나를 무력으로 몰아세우며 미국 및 유럽과 각을 세우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등 서방 진영으로부터 인권 문제에 대한 비판을 받는 가운데 올림픽을 여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로이터연합뉴스

책은 7개 챕터로 구성돼 있다. 러시아, 중국, 남아시아, 중동, 이란, 북한 그리고 국경 없는 전쟁터인 사이버 공간을 분석한다. 러시아의 경우 냉전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푸틴 대통령의 야심은 오히려 더 커졌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책은 미국을 적대시하는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에서 러시아가 여전히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작업을 교묘히 벌이고 있다고 진단한다.


중국에 대해서는 “많은 자유 세계의 재계와 정치 지도자들이 중국의 뻔한 속임수에 넘어가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맥마스터는 “중국이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체제로 동맹국들의 의지를 시험하고 압박한다”며 중국에 민감한 기술을 이전해 부당한 이득을 안겨주거나 인간 자유를 억압하는 중국 공산당에 도움이 되는 투자를 해선 안된다고 호소한다.



중국은 물론 러시아의 패권 도전에 직면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5일 워싱턴 마린 배럭스에서 군인들의 경례에 답하고 있다./AP연합뉴스

남아시아, 중동, 이란, 북한은 강대국 간 패권 경쟁이 복잡한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지역이다. 한국 독자에게는 당연히 미국의 대북 전략 분석과 회고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 것이다. 맥마스터는 트럼프 정부 초기 북한에 대해 단행했던 ‘최대 압박’이 유효했다고 평가한다. 중국과 러시아를 배후에 두고 폐쇄적 세습 독재를 이어가고 있는 북한에게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도, 문재인 정부의 ‘달빛정책’도 무효했다고 지적한다. 맥마스터는 백악관 외교안보보좌관으로서 한국의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과 일본의 야치 쇼타로 국가안보국장 등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한미일 3각 공조에 힘썼던 점을 스스로 높이 평가하면서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한미일 3각 동맹 체제가 더욱 굳건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별도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맥마스터는 “한국과 미국은 역사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말처럼 두 나라는 중대한 위협과 도전으로부터 자유와 민주주의를 어렵게 지켜낸 경험이 있다. 또한 지금 이 순간도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경험을 통해 동맹의 힘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역사적 경험을 기억하며 자부심과 자신감을 충분히 가져도 된다. 다만 지금은 과거와 달리 안보, 경제, 외교 모든 면이 함께 맞물려 움직이는 이른바 복합 위기의 시대다. 맥마스터의 말 대로, 쉽게 넘볼 수 없는 국가가 되는 일은 이카루스의 날개를 달고 비행하는 일과 다를 바 없다. 자만해서 높이 올라가면 날개가 녹아내리고, 소극적으로 낮게 날면 날개가 물에 젖어 추락하고 만다. 세상을 바라봄에 있어 예리한 통찰과 섬세한 균형감이 각별히 요구되는 시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3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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