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우크라이나 침공 감행 시 러시아 천연가스 사업에 대한 자금 조달과 기술 이전을 대폭 축소하는 제재안을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와 독일을 직접 연결한 가스관 노르트스트림 2의 가동을 불허하는 방안도 제재안에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천연가스 공급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유럽이 오히려 가스 밸브를 움켜쥔 러시아를 상대로 ‘역공’을 펴는 모양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7일(현지 시간)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영국과 유럽연합(EU)이 공동으로 이 같은 제재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와도 제재안과 관련해 조율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는 천연가스 매장량이 38.9조㎥(2018년 기준)로 세계 1위 가스 보유국이다.
그러나 가스 생산은 미국·유럽 등 서방 기업과의 합작 형태가 비중이 높다. 실제로 영국 석유사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러시아 국영 석유사인 로스네프트 지분을 5분의 1가량 보유하고 있으며 네덜란드 로열더치셸도 러시아 가스프롬과 합작해 극동 지역에서 가스를 시추하고 있다. 따라서 자금 조달과 기술 이전을 막아 러시아 가스 산업에 타격을 준다는 것이 영국과 EU의 복안이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유럽으로서는 이번 제재가 ‘고육책’에 해당한다. 러시아가 지난해 겨울 전부터 가스 물량을 대거 줄인 탓에 유럽은 심각한 가스 수급난을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한 전기료 인상 등으로 인플레이션까지 이어진 상황이다. 미 CNN방송은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가스 전면 공급 중단은 파멸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유럽이 이번 제재안에 건설비만 총 100억 유로(약 13조 4500억 원)가 투입된 노르트스트림 2를 포함한 것도 주목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등 인접국을 거친 가스 공급을 줄이는 마당에 해상으로 유럽과 직결되는 가스관을 일시적이나마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제재안은 가스 공급 중단이 러시아에도 막대한 타격이 된다는 유럽의 계산이 깔려 있다. 러시아 연방 예산의 절반가량이 석유·가스 수출에서 나오는 만큼 러시아로서도 유럽 ‘판로’ 차단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는 “유럽에서는 이참에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고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를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고 전했다. 미국과 유럽이 카타르 등과 신속히 가스 공급 협상에 나선 배경에도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가 자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미국 측이 러시아에서 제안한 ‘안전 보장안’을 거부하며 우크라이나에서는 ‘일촉즉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가 다음 달 중순 침공을 감행한다는 구체적인 시점까지 거론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가 접경 지역에 전투 부대에 이어 의무병까지 파견한 점을 지적하며 “러시아가 침공 준비를 마친 것”이라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하며 “침공이 현실화하면 결단력 있게 대응할 것”이라고 지원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해 오는 31일 공개 회의 개최를 요청했다. 유엔 차원에서 러시아의 침공 의지를 억지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러시아 역시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만큼 실질적 조치를 이끌어내기는 힘들다는 관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