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사장님의 눈물'…정부 개입에 민간 5년간 757곳 폐업

■정권말 가격 통제 부작용 속출
ℓ당 100원 싸게 기름 공급…시장 흔들며 기존 업자 벼랑끝
분양가상한제 탓 '유상옵션 꼼수' 판치고 주택 공급 늦어져
증권신고서 반려로 IPO까지 통제…'따상' 조장해 시장 왜곡



정부의 도를 넘은 가격 개입이 시장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관치(官治)의 영향력이 큰 공기업과 금융권을 중심으로 각종 가격을 통제한 데 따른 부작용이 정권 말기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전현배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시장 개입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최소한의 원칙은 있어야 한다”며 “1970년대 짜장면값 통제하듯 가격을 누르면 미래에 닥칠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가 가장 강력한 가격통제력을 행사하고 있는 분야는 에너지 업종이다. 연료비의 움직임에 따라 전기요금을 책정한다는 ‘연료비연동제’의 경우 원래 지난해 1월부터 도입됐지만 당시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조정 단가를 동결한 데 이어 최근에는 오는 3월 대선 이후로 전기요금 인상을 미루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 전력 공기업인 한국전력은 지난달에만 2조 4000억 원에 이르는 공사채를 찍어내며 사실상 차입금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상태다. 시장 수요보다 채권 물량이 더 늘어나면서 채권금리도 뛰어 10년물 발행금리가 3%를 넘보고 있다. 민간 신용 평가 기관이 평가하는 한전의 채권금리보다 10bp(1bp=0.01%포인트) 이상 높은 수준이다. 정부의 가격 개입 정책 탓에 수익을 제대로 내지 못하면서 원래 물어야 할 금리보다 더 많은 이자를 내며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이자 부담은 자연스럽게 국민들에 대한 요금 인상 청구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공기업뿐만이 아니다. 정부의 왜곡된 정책은 민간 시장까지 흔들고 있다. 사실상 정부가 돈을 대는 알뜰주유소에 밀린 민간 주유소 시장의 경우 이미 정부의 잘못된 통제에 시장 기능을 상실했다. 2016년 1만 1899곳에 달했던 국내 주유소는 지난해 말 1만 1142곳으로 5년 만에 757곳이 문을 닫았다. 반면 같은 기간 알뜰주유소는 108곳이 늘어 민간의 빈자리를 알뜰주유소가 치고 들어가는 형국이다. 알뜰주유소가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인 배경에는 정부 지원이 있다. 공기업인 석유공사는 여러 정유 업체로부터 입찰을 받아 싼 가격에 기름을 대량 구매한 뒤 마진을 거의 붙이지 않고 알뜰주유소에 공급한다. 덕분에 알뜰주유소는 일반 주유소보다 ℓ당 100원 이상 저렴한 가격에 물량을 판매하고 있다. 정부는 소비자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지만 주유소 업계에서는 “정부가 시장에 노골적으로 개입해 일반 주유 업자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시장 개입 수위가 한층 높아졌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유류세 20% 인하를 단행하기 직전 알뜰주유소에 할인 가격이 반영된 물량을 먼저 공급하면서 발생한 100억 원 규모의 비용을 자본 잠식 상태인 석유공사에 떠넘겨버렸다.


문재인 정부가 27차례의 대책을 내놓은 부동산 시장에서도 시장 개입에 따른 부작용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인천 검단신도시에서 분양이 진행된 A 아파트의 경우 전용 84㎡ 분양가는 약 4억 8000만 원이지만 붙박이장, 화장대, 팬트리(식자재 저장고) 등이 포함된 유상 옵션 비용은 총 5500만 원에 이른다. 정부의 분양가상한제 규제를 회피하는 일종의 ‘꼼수’인 셈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분양가에 혹해 청약에 나섰던 수요자들이 자칫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임대차 3법 강행→전월세 시장 혼란 △분양가상한제→민간 아파트 공급 지연 △전세대출 제한→월세가 상승 등도 모두 부동산 시장 개입에 따른 부작용으로 꼽힌다.


여전히 관치의 입김이 센 금융권에서도 정부의 가격통제가 도를 넘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카드 수수료 인하, 대출 총량 규제 등으로 금융 산업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해왔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기업공개(IPO) 시장까지도 신(新)가격통제의 대상이 됐다. 금융 당국이 증권신고서를 반려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공모가 인하를 유도한다. 이 같은 정부 개입에 부담을 느낀 상장 기업과 증권사들이 공모가를 하향 조정하면서 이른바 ‘따상(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160% 상승)’이 보편화되는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의 기관투자가 수요예측에 1경 원이라는 기록적인 금액이 몰린 것도 시장 왜곡에 따른 일종의 부작용으로 볼 수 있다. 외환 당국의 한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에 외인 투자 자금이 일거에 몰렸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환율 관리 측면에서도 상당한 부담감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단기 차익을 얻은 투자자는 빠져 나가면 그만이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게 되는 셈이 된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격통제 정책은 장기적으로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게 부동산 정책에서도 이미 입증됐다”며 “정부가 국민의 고통만 키우는 정책 실패를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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