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What ]"대만에 반도체 기업 못 내줘"…獨, 실트로닉 매각 승인 거부

■고조되는 반도체 파워 게임
獨정부 '반도체 기술 안보' 명분
우호국 대만에도 깐깐한 잣대
글로벌웨이퍼스 M&A에 제동
美 등 각국 공급망 주도권 다툼
EU, 인텔·TSMC 공장 유치
반도체 육성 경쟁도 불뿜어

사진 설명

대만 웨이퍼(반도체 원판) 생산 기업인 글로벌웨이퍼스의 독일 실트로닉 인수합병(M&A)이 무산됐다. 인수 마감 시한이 지난달 31일이었지만 독일 정부는 ‘반도체 기술 안보’를 이유로 매각을 승인하지 않았다. 칩 제조 분야에서아시아에 대한 의존이 심화하는 가운데 유럽도 기술 패권을 의식해 자국 업체의 M&A에 호락호락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글로벌웨이퍼스는 “실트로닉에 대한 M&A가 무산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글로벌웨이퍼스는 경쟁사인 실트로닉을 43억 5000만 유로(약 5조 9000억 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지만 독일 정부가 발목을 잡았다. 독일 경제부는 이날 "투자 심사에 필요한 모든 검증이 기한 내에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독일은 지난해부터 인공지능(AI)·반도체 등 미래 핵심 기술에 대한 통제력 상실을 우려해 투자 심사를 강화해왔다. 지난 2019년 78건, 2020년 106건이었던 독일 당국의 외국 기업 간 기술 거래 심사는 지난해 306건으로 크게 늘었다. 독일은 앞서 2016년 산업용 로봇 제조 업체 쿠카를 중국 가전 업체 미데아가 45억 유로에 인수하자 자국 기업에 대한 외국인 인수 규정을 강화해왔다. 필요할 경우 국가가 자국 기업의 지분을 인수하는 정책도 시행하고 있다. 사실상 중국 업체의 자국 기업 M&A에 반대한 것이다.


이번 건의 경우 대만 업체에 대한 승인 거부라는 점이 눈에 띈다. 중국 등 적성국뿐 아니라 우호 관계인 국가에 속한 기업이라도 핵심 기술 기업을 인수하려는 시도에는 한 치의 예외도 없이 깐깐한 잣대로 심사한다는 원칙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FT는 “기술 주권을 우려하는 독일이 작은 웨이퍼 공급처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며 “반도체 공급망이 국가 안보의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면서 반도체 쟁탈전은 21세기 산업의 큰 흐름이 됐다”고 분석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브래디 왕 기술애널리스트는 “반도체 제조 전 단계에서 특정 기업이나 국가가 완전히 자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특히 각국이 세계 무대에서 협상하거나 경쟁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의 일부를 확보하려 하면서 이런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각국 정부의 반도체 육성 경쟁은 불을 뿜고 있다. 티에리 브레통 EU 내부시장 집행위원은 “유럽 내 반도체 기업에 대한 공공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며 “5㎚(나노미터·10억분의 1m) 미만의 최신 반도체 칩을 유럽에서 생산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EU 집행위원회는 인텔 유치를 위한 대규모 보조금 지급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은 2019년부터 중국 화웨이의 미국 반도체 칩 기술에 대한 접근을 차단해왔다. 지난달에는 미국 하원에서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520억 달러(약 62조 3220억 원)를 지원하는 법안도 마련했다. 여기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강조해온 반도체 산업 육성 지원뿐 아니라 중국 등 비(非)시장경제국이 미국에 제품을 수출할 경우 관세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각국 정부의 M&A 심사는 갈수록 깐깐해지고 있다.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 엔비디아의 영국 반도체 지식재산권(IP) 업체 ARM 인수도 불발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영국·유럽연합(EU)·중국 등이 모두 불공정한 독점을 우려해 인수를 승인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