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촬영이 브래들리 쿠퍼, 그러니까 존 피터스와 함께였어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서 몇 번이나 반복했던 그 장면이요.”
로맨틱 코미디 ‘리코리쉬 피자’에서 아역배우이자 10대 사업가 개리 발렌타인을 연기한 쿠퍼 호프먼은 이 영화가 데뷔작이다. 생애 첫 연기는 물침대 배달을 가서 만난 존 피터스가 그에게 여자친구의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하도록 위협하는 기 싸움이었다. 쿠퍼는 “책임자로 나선 내 어깨를 움켜쥔 채 얼굴을 내려다보며 자신이 누군지, 여자친구가 누군지 아느냐고 묻는 그의 호기에 주눅이 들었지만 당당히 맞서야 했다”고 촬영 첫 소감을 밝혔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리코리쉬 피자’는 1970년대 할리우드 괴짜 영화인들의 일화를 감초로 고교생 개리와 열 살 연상 알라나의 케미를 그린 청춘 영화다.
LA 리전시 빌리지 극장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쿠퍼는 “연기자가 되기를 원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버지(고 필립 시모어 호프먼)와 친했던 폴이 아이폰을 사용해 가족과 찍곤 했던 홈 무비에서 악당 역할을 주로 했고 영웅처럼 등장해 폴의 아들을 신나게 두들겨 패는 액션 연기가 전부였다”고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영화 제목인 ‘리코리쉬 피자’는 1969년 설립돼 1985년에 매각된 LA 인근 레코드 체인점으로, 감독의 어린 시절 어디쯤에 존재하던 추억의 장소이다. 이 영화의 배경인 샌퍼난도 밸리에도 당시 매장이 있긴 했지만 영화 ‘리코리쉬 피자’에는 ‘리코리쉬 피자’가 없다.
쿠퍼는 “영화 촬영 일 년 전쯤 폴이 전화를 걸어 작업 중인 새 시나리오라며 워드 파일을 보냈다. ‘개리’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든다고 했더니 알라나 하임과 뉴욕에 가는데 오디션이나 한번 보자고 권유했다”고 밝혔다. 알라나 하임은 영화 속 개리가 첫 눈에 반한 맹렬 여성 알라나 케인역으로 감독이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염두에 두었던 3인조 밴드 ‘하임’의 막내다. 뉴욕에 사는 쿠퍼는 “알라나를 만나 대본 읽기를 했고 장시간에 걸쳐 카메라 테스트를 받았다”며 “하임 자매들과 나란히 앉아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기뻐서 울고 말았다”고 말했다.
2003년생인 쿠퍼는 다이얼을 돌리는 전화기 사용법을 몰랐다. 발신자 번호 표시를 제한하는 *69을 누르지 않느냐고 감독에게 되물어야 했다. 감독이 건네준 1970년대 유행 음악을 들었고 추억의 시트콤 ‘파트리지 패밀리’와 TV시리즈의 고전 ‘M*A*S*H’를 지겹도록 봐야 했다. 인스타그램이나 스냅챗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고, ‘밸리 걸’ 알라나의 차를 타고 샌퍼난도 밸리 맛집 순례도 다녀야 했다. 아쉽게도 영화에 등장하는 ‘테일 오 더 콕’은 1985년에 문을 닫은 레스토랑이어서 사진으로만 봤지만, 당시 벤추라 블러버드에서 정장 차림으로 들어가는 고급 레스토랑이자 할리우드 스타들이 스튜디오 촬영을 끝내고 마티니 한 잔을 즐기던 아지트로 이해했다고 그는 언급했다.
배리(아담 샌들러)가 정신 못 차릴 만큼 사랑에 빠졌던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2002)에 후한 점수를 준 관객이라면 이 영화의 매력에 제대로 빠질 수 있다. 배리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화장실을 부순 레스토랑 ‘르 쁘티 샤토’의 인근 동네가 ‘리코리쉬 피자’의 주 무대다. 다만, 1970년대 미국의 대중문화를 접하지 못했다면 할리우드 유명 프로듀서가 된 존 피터스는 물론이고 루시 두리틀로 등장하는 ‘아이 러브 루시’의 루실 볼, 숀 펜이 연기한 무비스타 잭 홀든 정도는 알고 영화를 봐야 웃음 포인트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하은선 미주한국일보 부국장, HFPA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