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내고 덜 받는' 방식만으론 부족…기초-국민연금 연계해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연금개혁]
<상>연금개혁 공론화 시동
기초연금 축소·폐지하거나
국민·퇴직연금 재정립하는
'계층별 다층연금체계' 구축
'연금자동안전장치' 방안도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해결해야 할 과제임에도 표를 잃을까 봐 제쳐뒀던 연금 개혁이 대선판 이슈로 부상했다. ‘더 내고 덜 받거나 늦게 받는’ 연금 개혁은 표를 잃게 할 것이라는 계산에 미적거리던 대선 후보들이 억지 춘향식으로 동의를 했다 해도 연금 개혁은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차기 정부가 바로 시작해야 하는 개혁 과제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올해 서른이 된 1992년생이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65세가 되는 오는 2057년에는 국민연금이 이미 고갈돼 받을 것이 없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미래 세대를 위해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며 “차기 대통령은 욕먹을 각오를 하고 연금 개혁과 노동 개혁 등 미래 세대를 위한 정책을 최우선순위에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연금 개혁의 필요성이 떠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일단 국민연금이 도입된 후부터 재정 및 지급액을 놓고 논란이 계속됐다. 하지만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속 ‘정치 역풍’에 어느 정권도 시원한 개혁안을 내놓지 못했다. 그나마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가 소득대체율을 낮추고 수급 연령을 높였다. 박근혜 정부는 공무원연금 보험료를 18%로 올렸다. 개혁의 의지는 보인 셈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손도 대지 못했다. 지난 2018년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반발이 거세자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며 흐지부지 넘어갔다.


현재 국민연금과 관련해 문제로 제기되는 내용은 크게 재정과 소득대체율(생애 평균 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이다. 저출산·고령화의 심화로 낼 사람은 적어지고 받을 사람은 많아지면서 국민연금의 재정은 불안한 상황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보험료율(9.0%)과 소득대체율(40%)이 유지될 시 국민연금 재정수지는 2039년 적자로 전환되고 적립금은 2055년 소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1990년생부터 국민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으로 ‘노후 대비’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문제다. ‘용돈 연금’이라는 비판 속에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국민연금이 도입된 1988년 당시 소득대체율은 70%에 달했지만 수차례의 개혁을 거치면서 2028년부터는 40%까지 줄어들게 된다.


국민연금의 개혁 방식은 이미 나와 있다. 숫자를 조정하는 ‘모수적 개혁’과 구조를 뜯어고치는 ‘구조적 개혁’이 있다. 재정 문제가 계속해서 악화하는 상황에서 모수적 개혁은 결국 ‘더 내고 덜 받는 식’의 개혁이다. 수급 연령 기준을 높여 지급 시기를 늦추는 것 또한 모수적 개혁 방법의 하나다. 다만 모수 개혁은 고갈 시기만 늦출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소득대체율을 45%로 인상하되 점차 40%로 인하하고 보험료율을 2%포인트 즉각 인상(9~11%)하는 1안과 소득대체율은 40% 현행 유지, 보험료률 13.5%를 2019년부터 10년간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연금 수령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연기(2030~2043년)하는 2안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구조적 개혁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노령연금과 연계해 기초연금을 확대하고 국민연금 수급액을 줄이거나 반대로 기초연금을 줄이거나 국민연금과 통폐합하는 방안 등이다. 김헌수 한반도선진화재단 조화사회연구회 부회장은 구조적 개혁안으로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는 국민연금 소득 재분배 부문과 기초연금을 통합하고 소득 재분배값 연간 기여분 및 기존 적립금, 기초연금 예산을 더해 특별 계정을 신설하는 방안이다. 대신 65세 이상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는 최저소득보장으로 전환해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한다. 두 번째 안은 현 체계 속 보험료를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유지 또는 인상하는 모수 개혁과 함께 최저보장연금을 신설하는 방안이다. 기초연금은 폐지하되 최저연금과 실질 연금액(국민연금+기초연금) 간 차액은 보상해준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역시 국민연금의 구조적 개혁 방안으로 기초연금·국민연금·퇴직연금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계층별 다층 연금 체계’를 제시했다. 해당 체계는 기초연금은 최저보장연금으로 전환해 하위 계층의 노후 소득 보장을 강화한다. 국민연금은 인구·경제 상황을 반영해 기여와 급여의 수지 균형을 도모해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이루고 퇴직연금은 노후연금으로 정착시키는 방안이다.


출산율, 기대 수명 증가, 경제성장률과 같이 연금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을 바탕으로 매년 연금을 산정하는 ‘연금자동안정장치’ 또한 하나의 개혁 방안으로 제시된다. 저출산·고령화 속에 연금 재정이 나빠지지 않도록 연금을 삭감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수급자들이 받는 연금액이 급감하게 되지만 연금 충당 부채가 늘어나지 않아 재정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해당 제도는 스웨덴·노르웨이·독일·일본 등 상당수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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