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직전 삼성전자의 지난해 실적이 발표됐습니다. 미국의 인텔과 우리나라의 SK하이닉스, 대만의 난야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속속 실적 발표에 나섰습니다. 기업마다 약간의 부침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결과는 좋았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51조6,339억원으로 전년보다 43.45% 증가했고, SK하이닉스는 12조4,103억원으로 148% 늘었습니다. 인텔도 시장 기대를 웃도는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인텔은 실적 발표 다음 날 증시에서 7% 이상 폭락했습니다. 삼성전자도 실적 발표 당일 2%대 약세를 보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기업이 내놓은 시장 전망이 좋지 않았습니다. 인텔은 올해 1분기 실적 가이던스를 매출 183억달러, 주당순이익 0.8달러로 제시했습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 줄었고 주당 이익은 40% 감소한 수치입니다. 이 때문에 주가가 급락했죠. 이번 <코주부 레터>에서는 우리 경제와 증시를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 산업 전망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개인 투자자들이 반도체 시장을 판단할 때 참고할 만한 자료와 어디서 볼 수 있는지를 간단하게 나마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HTS나 MTS를 보며 “십만전자는 언제?”라고 생각만 하는 것보다는 직접 반도체 시장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투자를 결정하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또 성장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실적을 발표하면서 부쩍 ‘불확실성’을 강조했습니다. 지난달 27일 열린 컨퍼런스콜에서도 수차례 “불확실한 요인들이 상존한다”고 밝혔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인지 구체적인 연간 비트그로스(비트당 출하량 증가율) 가이던스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시장에 대한 판단은 서버와 모바일 중심의 메모리 반도체 수요는 탄탄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CPU 수요 및 기업들의 IT 관련 투자가 늘어나는데다 5세대 이동통신 확대 영향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사이클의 주기가 과거보다 축소되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분석도 남겼습니다. 최근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락했지만 올해 상반기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1위인 삼성전자가 인텔이나 대만의 TSMC와 달리 투자는 보수적으로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SK하이닉스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지속됐던 공급망 이슈가 올 상반기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SK하이닉스 역시 일반 PC보다는 데이터센터 등 기업 수요를 중심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고요. 올해 서버용 D램 수요는 20% 후반대, 기업용 SSD 수요는 30% 초반대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낸드 시장의 수요 성장은 30% 수준으로 전망했네요. 1분기는 비수기인 만큼 D램이나 낸드 모두 출하량은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국내 반도체 1·2위 기업은 공통적으로 올 하반기로 갈수록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하는 듯합니다. 공급망 이슈가 여전히 문제인 상황에서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공급을 크게 늘리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증권사들도 대체로 반도체 수급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KB증권은 D램과 낸드 가격의 하락 추세가 1분기 이후 점차 완화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요. 미래에셋증권은 올해 2분기까지는 가격 하락 압력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공급망 이슈가 완화되기 시작하면 쌓아둔 재고들도 빠르게 소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덧붙였습니다. IBK투자증권은 D램의 경우 공급과 수요 증가 모두 제한적인 상황에서 가격은 연간 하락세가 유지되는 반면 낸드는 올해 4분기께 가격 반등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대체로 반도체 시장 전망을 아주 장밋빛으로 보고 있지는 않지만 회복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렇게 보면 될 듯합니다.
기업과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이 쏟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내 눈으로 보기 전엔 믿지 못하겠다”는 개인 투자자들도 계시겠죠. 사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우리 개미들이 전망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전망의 근거가 되는 자료를 찾기도 힘들죠. 하지만 시장을 판단하는 데 참고할 자료들은 조금 품만 들인다면 찾기 어렵지 않습니다.
우선 선행지표부터 알아보겠습니다.
①먼저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입니다. 북미 반도체 장비 출하량이 공개되는데요. 장비 출하량은 보통 반도체 시장의 선행지표로 사용됩니다. 회원들에게만 공개되는 정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정보가 있습니다. 북미 반도체 장비 출하량은 좀 늦긴 하지만 요약돼 공개됩니다. 링크는 지난달 25일 발표된 지난해 12월 반도체 장비 출하량 자료입니다. 장비 출하량은 투자와 관련이 깊겠죠. 투자가 늘어나면 공급도 증가합니다. 예컨대 반도체 시장의 성장 정도를 나타내는 비트 그로스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출하량이 늘어난다면 반도체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질 우려가 있음을 나타냅니다.
②SEMI는 유료 자료인 만큼 일본반도체장비협회(SEAJ)의 출하량 자료를 참고하셔도 됩니다. 역시 지난달 25일 공개된 자료인데요. 장비 출하량 증감과 관련한 흐름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일본 장비업체들의 출하량은 지난달 꽤 큰 폭으로 늘었더군요. 장비 출하량 외에 웨이퍼 출하량도 반도체 시장의 선행지표로 사용됩니다. 예전에는 IC 인사이트라는 시장조사 기관에서 때때로 발표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하지 않는 듯합니다.
③ISM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도 선행지표로 사용됩니다. ISM 제조업 PMI는 기업의 구매·공급 담당자에게 신규주문, 주문잔고, 신규수출주문, 수입, 생산, 공급업체 납품, 재고, 고용, 가격 등에 관해 묻고 이를 지수화한 것입니다. 앞으로 기업의 경영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짐작할 수 있는 지표로 사용됩니다. 예전에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이 미국 ISM 제조업 PMI가 6개월 후 반도체 업황과 굉장히 높은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반도체가 산업의 쌀이라고 하니 맞는 말씀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납니다. PMI는 지수만 보지 마시고, 직접 ISM 사이트에 가서 보고서도 한 번 보시라고 권해드립니다. 이외에도 중국 제조업 PMI나 OECD 경기선행지표(CLI)도 선행지표로 참고할 만합니다.
다음은 동행지표입니다.
①동행지표로는 우선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TST)에서 발표하는 전세계 반도체 월별 거래량이 있습니다. 링크는 최근 35년간 월별 반도체 거래 데이터입니다. 지난해 11월 통계까지만 반영이 돼 있는데요. 지난해 11월 반도체 거래량이 부쩍 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②우리나라가 반도체 강국인 만큼 우리나라의 수출입 자료도 동행지표로 유용합니다. 무역협회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무역협회 사이트에 접속하셔서 국내통계→품목수출입 항목을 누르고 관세통계통합품목분류표(HSK) 10단위 코드번호를 입력하면 됩니다. 반도체 전체는 HSK 코드가 8542, 메모리는 854232, 비메모리는 854231, D램은 8542321010, 낸드플래시는 8542321030입니다. 지난달 국내 D램 수출액을 보니 256억달러로 전월 대비 35% 늘어난 것으로 나오네요.
③국내 기업들은 분기마다 실적을 공개하지만 대만의 서버·PC 기업 중에서는 월별로 실적을 공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들 기업의 실적을 보면 현재 반도체 시장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기업이 대만의 에이스피드입니다. 서버 전문 기업인데요. 지난해 12월 이 기업의 수익(Revenue)은 3,706억 대만달러입니다. 전년 12월(2,805억 대만달러)보다 32% 늘었습니다. 큰 폭의 성장이긴 한데 10월 이후 증가 폭이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에이스피드 외에 노트북이나 PC 반도체 시장 상황을 가늠해볼 수 있는 기업으로 콴타컴퓨터, 콤팔 등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반도체 가격 사이트가 있습니다. 다만 이 곳은 대부분 유료라, 우리 같은 개미들은 데이터를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현물가격은 매일 공시를 합니다. 반도체 가격은 고정거래가격(계약가격)과 현물가격으로 구분됩니다.
고정거래가격은 반도체 생산 기업이 수요처와 계약을 맺고 대량으로 물량을 거래할 때 정한 가격입니다. 보통 2주 단위로 가격을 조정하구요. 현물가격보다 5~10% 높게 형성됩니다. 현물가격은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유통업체, 소비자간 거래되는 가격입니다. 현물시장은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비중은 낮지만 앞으로의 고정거래가격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현물가격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네요. 예컨대 올해 1분기 반도체 현물가격이 오름세를 보였다면 2분기 반도체 기업의 실적은 좋아질 겁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좋을 것이라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현물가격 상승이 일회성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전체적인 반도체 산업 사이클과 함께 봐야 합니다. 대표적인 가격 사이트는 디램익스체인지를 들 수 있습니다. 반도체 시장 전망도 가끔씩 발표하니 눈여겨 볼 만합니다.
이렇게 참고할 만한 사이트를 쭉 소개는 해드렸는데, 지표들을 해석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통계는 좋아 보이는데 개인이 알 수 없는 업계의 사정도 있을 것이고, 서로 상반되는 결과를 보이는 통계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판단이 안 설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 개인 투자자들이 시장을 면밀하게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애널리스트 등 전문가들이 제시한 전망을 무작정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조금씩 갖춰간다면 투자라는 음식에 ‘현명함’ 한 술 정도는 추가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