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뒤면 초고령화 사회…차기정부 집권초에 연금개혁 승부 봐야

[더이상 미룰수 없는 연금개혁]
<하> 연금개혁 성과 내려면
과거 정부도 손보려고 했었지만
'여론눈치'에 미적대다 기회 놓쳐
차기 정부선 단일안으로 속도전
전문성 높여 운용 수익률 제고도
진영논리 벗어난 개혁만이 살길

서울 종로 탑골공원 무료급식소에 노인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대선주자 1차 TV토론에서 유권자들은 기존에 보지 못했던 생소한 광경을 맞닥뜨렸다. 지지율 1~3위 후보가 모조리 “차기 정부에서 연금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한목소리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금 전문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하다. 우리 사회에서 연금 개혁은 5년마다 한 번씩 벌어지는 일종의 ‘정치쇼’에 가깝다는 인식 때문이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연금제도는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설령 개혁 의지가 있다고 해도 개혁안(案)을 도출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막상 개혁안이 나오더라도 총선 등 각종 선거 때문에 눈치를 살피느라 밀어붙이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연금 개혁을 5년 더 미적거려도 될 정도로 여유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와 저출산이 뼈아프다. 한국은 3년 뒤인 오는 2025년부터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연금 학계를 중심으로 차기 정부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연금 개혁의 첫발을 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연금 개혁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속도·신뢰 회복·전문성 확대’의 3대 원칙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누가 돼도 연금 개혁 속도내야=과거 정부에서도 연금 개혁에 대한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개혁 과제에 보수적이던 박근혜 정부도 국민연금에는 손을 대지 못했지만 공무원연금에는 칼을 대 방만한 재정 구조를 어느 정도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는 했다. 집권 이듬해인 2018년 말 정부가 직접 만든 네 가지 제도 개선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다음 해 8월에는 정부가 직접 만든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연금특위에서 또 세 가지 방안을 만들어 국회에 넘겼다.





문제는 이런 일곱 가지 방안이 국회를 떠도는 동안 개혁에 대한 추진력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점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정말 개혁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면 정부 단일안을 만들어 밀어붙였어야 한다”며 “다수안을 만들어 국회에 넘겼다는 것 자체가 공무원 사회에 ‘개혁은 없다’는 신호를 던져주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2018년 만든 위원회에 소속된 전문가들은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5%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은 지금처럼 40%로 유지하자”는 방안을 냈지만 결국 모두 폐기됐다.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2018년 11월 개혁안을 청와대에 제출했을 때도 문재인 대통령은 보험료율 인상 폭이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다는 점을 이유로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기금 운용 전문성 확대로 수익률 제고=우리 국민연금의 가장 큰 문제는 저출산·고령화 탓에 언젠가 기금이 바닥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연구기관마다 추산 결과가 다르기는 하지만 고갈 시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점은 반론이 없다.


다만 고갈 자체를 막지는 못하더라도 시점을 뒤로 미루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국민연금기금의 운용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2019년 발표한 ‘2019~2060년 국민연금 재정전망’ 보고서에서 평균 3.7%로 가정한 운용 수익률이 4.7%로 1%포인트 높아질 경우 당초 2054년으로 봤던 고갈 시점이 2058년으로 4년 더 늦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수익률이 높아지면 그만큼 연금 재정에도 숨통이 트이는 구조인 셈이다.


물론 그동안 국민연금이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2018년 충격적인 적자를 내기도 했지만 이듬해 11%가 넘는 수익률을 내는 등 코로나19 위기 와중에서도 안정적인 기금 관리가 돋보인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이 같은 성장세 속에 국민연금 기금 자산은 내년 중 1000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커지는 덩치에 비례해 외부 간섭이 커지며 자율성과 전문성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복지부 장관이 기금위원장을 맡는 후진적 지배구조는 연금의 전문성과 신뢰를 떨어뜨린다.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국부펀드(GPFG)나 캐나다연금(CPP) 이사회가 모두 금융·투자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것과 딴판이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국민연금이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연금 사회주의’로 가지 않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잃어버린 신뢰 회복이 관건=궁극적으로는 국민연금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 회복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금처럼 9만 원 내고 40만 원 받아가는 구조로 제도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국민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정치 논리가 개입되며 개혁에 손을 못 대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기금이 모두 고갈되더라도 보험료율을 높이면서 당해년도에 연금을 걷어 나눠주는 방식(부과식)으로 제도를 개선하면 연금 미지급 사태까지는 벌어지지 않는다는 게 국민연금 측의 설명이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적연금을 둘러싼 전체적인 사회보장 방안을 공론화하고 팩트를 가감없이 들춰내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며 “국민연금의 개혁만큼은 이념이나 진영 논리를 벗어나 제대로 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금 개혁을 미룰수록 젊은 세대의 반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법에 지급 보장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자칫 이 같은 주장이 연금개혁 논의 자체를 막을 수도 있다. ‘지급이 보장되는데 뭐하러 개혁하냐’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기 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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