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새해 벽두부터 세상이 정말로 시끄러워지고 있다. 지구 전역에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에 10만 명의 지상군을 파병, 언제라도 우크라이나를 무력 점령할 태세다. 미국은 항공모함 트루먼호를 지중해에 파견하고 8500명의 지상군 병력을 동유럽에 주둔시킬 예정이다.
유럽만 시끄러운 것이 아니다. 북한은 새해 들어 1월 한 달 동안 무려 7회의 미사일을 발사했고 1월 30일 7번째 발사는 미국령 괌섬을 공격할 수 있는 중거리 미사일이었다. 2017년 11월 이후 가장 심각한 규모의 도발이며 미국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는 동안 미국 서부 공항의 여객기 이륙을 금지시킨 적도 있었다.
보다 더 심각한 곳은 서태평양 지역이다. 미국은 2월 초인 현재 중국 앞바다에 무려 5척의 항공모함을 파견해 놓은 상태다. 정규 항공모함 3척에, 2척의 상륙 강습함이 대만 부근의 해역으로 이동해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 세계 도처에서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이 러시아·중국·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군사적 대치 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모습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가 많이 풍겼던 세기는 20세기였다. 20세기 초반에는 2차례의 세계대전이 발발, 수천만 단위의 인명 피해를 기록했다. 2차 대전 이후 약 45년 동안 지속된 냉전의 시대에는 미국과 소련의 핵 전쟁 가능성과 그로 인한 지구 절멸의 공포에서 떨며 살았다. 냉전 기간에 발생했던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역시 수백만 명의 인명을 앗아 갔었다. 막강한 소련제국이 미국과의 전쟁 없이 멸망한 덕택에 피비린내 나는 20세기는 사실상 1990년에 종말을 고했다.
21세기는 평화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더불어 시작됐다. 이제 다시는 강대국들이 으르렁거릴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됐다. 강대국 사이에서는 물론, 강하지 않은 나라들 사이에서도 전쟁은 더 이상 있을 것 같지 않았다. 21세기의 세계 정치에서 전쟁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것들은 기껏해야 테러리스트·게릴라들을 소탕하기 위해 벌인 반테러 전쟁이었지 국가들이 정식으로 치고받는 전쟁은 아니었다. 21세기에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치른 전쟁은 한국전쟁·월남전쟁과 비교할 때 그다지 처절한 전쟁은 아니었다. 그래서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인간의 본성에 있는 천사가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폭력이 대폭 줄어든 세계를 맞이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제정치학자 조슈아 골드스타인은 “전쟁과의 싸움에서 인간들이 드디어 승리했다”며 국가들 사이의 전쟁이 거의 없어진 현실을 진단했다.
국제정치의 논리가 변한 바 없고, 특히 강대국들의 논리가 변한 바 없기 때문에 21세기 역시 ‘또 다른 피비린내 나는 세기(Another Bloody Century)’라는 제목의 책을 저술한 전략이론가 콜린 그레이의 주장은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을 연구하는 필자는 그레이 교수의 주장에 동감을 하면서도 ‘설마 그럴 리가’라고 생각했었다.
냉전이 끝난 후, 최소 21세기가 시작된 후, 강대국들인 영국과 프랑스·독일·러시아·이탈리아·미국·중국 등이 전쟁에 빠져 들어갈 일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2022년 지금 러시아와 미국의 전쟁이 불가능한 일 같아 보이는가. 미국이 러시아와 전쟁에 빠져들게 된다면 영국과 프랑스는 어떻게 행동할까. 시진핑은 군사력을 사용해서라도 대만을 통일할 것임을 선언했다. 일본은 중공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참전하겠다고 선언했다. 놀라운 일은 일본을 전쟁할 수 없는 나라로 만들었던 미국이 일본의 대만 전쟁 참전 선언을 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맹국 미국이 러시아·중국 등 강대국과의 전쟁마저 염두에 두는 세상에서 우리나라가 남의 집 불구경만 할 수 있다고 믿다가는 조선 멸망의 화를 다시 당할지도 모른다. 심각하게 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