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의 경영 성과를 올림픽 메달로 바꾸면 우리나라는 고작 은메달 한 개를 딸 수 있는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경제 전문지 포춘의 ‘글로벌 500대 기업’ 업종 분류·매출액을 올림픽 출전 종목·메달로 치환한 결과 한국은 20개 종목 중 삼성전자만 ‘기술 종목’에서 2위를 기록했다. 종합 1·2위는 각각 금메달 8개, 6개를 기록한 미국과 중국이 차지했다. 한국은 500개 대표 선수(기업)에 15곳이 출전권을 얻었지만 31개국 가운데 9위에 그쳤다.
메달 숫자보다 더 안타까운 대목은 ‘기업 올림픽’에 첫 출전한 신인 선수(기업)들이 27개에 달하는데 우리 기업은 한 곳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존 500대 기업에 들었던 선수들이 자리바꿈(상승 9개, 하락 4개)을 했을 뿐이다. 주력 기업의 경쟁력은 제자리인 반면 새롭게 성장하는 신사업은 거의 보이지 않는 우리의 현실을 방증한다.
우리 산업의 경쟁력이 정체하거나 퇴보하는 일차적 원인은 물론 기업 스스로에 있다. 창업 세대와 달리 2·3세로 갈수록 신규 사업 발굴과 대규모 투자 등 공격적 행보에 나서지 않으니 기업의 체력도 갈수록 저하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인의 열정이 꺾인 근본 배경에는 정부와 정치권의 퇴행적인 ‘규제 놀음’이 자리하고 있다. 전통 주력 기업들은 ‘규제 3법’의 족쇄에 신음하고 있는데 신사업의 토양이 될 기업형벤처캐피털(CVC) 법안은 대기업 특혜 논리에 발목이 잡혀 반쪽으로 전락했다. 반도체 공장마저 규제에 막혀 설립 발표 3년이 되도록 착공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일자리 효자 기업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에 가위눌려 해외로 나가려 하고 있다. 구호만 거창한 탁상행정으로는 창업 생태계를 살려낼 수 없다. 현장의 보이지 않는 규제 사슬을 샅샅이 뜯어내고 노동·세제 등의 구조 개혁을 단행해야 비로소 굳게 닫힌 기업의 투자 문을 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