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수요일] 밥

윤관영




그렇다


쌀을 다 쏟고 나서 그 포대를 세울 때


그 때


바닥으로 다시 떨어지는 몇 낱 알쌀의 그 소리


크다


매양, 그렇다


계량컵의 쌀을 쏟을 때


솥은 깨지는 소리를 낸다


쌀이 쌀 위에 떨어질 즈음에야


그 소리, 잦아든다



그러고 있다


길 없는 귀신의 길도


밥이 내고


밥이 메운다


그렇다




쌀도 먼저 맨바닥에 떨어질 때 비명을 지르는구나. 도정까지 마치고, 쌀눈까지 떨어져 눈이 멀었는데도 아득한 바닥이 무섭기만 하구나. 함께 쏟아지면 밥이 되는 길도 아늑하구나. 혼자 남아 빈 포대의 어둠으로 떨어질 때도 소리를 지르는구나. 밥이라는 글자를 보니 ‘ㅏ’ 하고 벌린 입 앞에 계량컵이 두 개 놓여 있구나. 밥은 가능하면 둘이 먹어야겠구나. 내가 길을 가는 줄 알았더니 밥이 나를 이끌고 가는구나. 내가 인생을 사는지 알았더니 밥이 나를 살고 있구나. 밥을 모시고 오늘도 아름다운 곳으로 가야겠구나. <시인 반칠환>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