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경쟁력을 높이려면 초중등교육 대비 한참 모자란 고등교육 지원 비중을 늘려야 합니다.” (박거용 대학교육연구소장)
“대학들이 오랫동안 교육부의 통제에 길들여져 혁신 생태계의 허브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육부가 모든 대학 정책을 관장하는 현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십수년째 이어진 등록금 동결에 학령인구 급감 파고까지 겹치며 대학이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 정부의 재정 지원은 부족한데 코로나19로 민간 기부마저 끊겨 연구개발(R&D) 투자는 엄두도 못 내면서 다른 선진국 대비 국내 대학 경쟁력은 최근 10여 년간 속수무책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 현 대학의 위기가 국가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는 진단마저 나온다.
교육 전문가들은 디지털 대전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대학의 위상을 높이려면 고등교육에 대한 민관의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아울러 한계 대학에 대한 구조 조정은 지속적으로 추진하되 정부가 일일이 대학에 간섭하는 규제 중심의 정책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수장을 지낸 이주호 전 장관(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은 교육 당국의 통제로 대학이 산업 생태계를 이끌지 못했다며 교육부에서 아예 대학 관리 기능을 떼어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민관 고등교육 투자 증액 방안 강구해야=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것은 고등교육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를 위해 고등교육세나 내국세에 연동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주장의 실현 가능성과는 별개로 교육재정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고등교육 지원액을 늘리는 것은 정부가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현청 한양대 석좌교수(전 호남대·상명대 총장)는 “우리 대학에 대한 공적 투자가 선진국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며 “대학에 대한 정부 지원을 늘리고 사학진흥법 개정을 통한 경상비 보전, 교육용·수익용 재산 간 칸막이 완화 등을 통해 대학 재정 운신의 폭도 넓혀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거용 소장도 “초중등교육 재정에서 고등교육 재원을 빼오는 제로섬 게임이 돼서는 안 된다”며 “복지·환경·고용 등 다른 국가 재정에서 일정 부분 끌어와 고등교육 재원을 마련할 필요가 있으며 14년간 동결된 등록금의 현실화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지원과 함께 민간의 대학 투자를 늘리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염재호 태재대 설립위원장(전 고려대 총장)은 “대학 기부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미국의 ‘인다우먼트(indowment·기부금) 펀드’ 운용 사례를 벤치마킹해 기부를 활성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규제 일변도 정책 혁파…교수 창업 활성화해야=교육 전문가들은 규제 중심의 교육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은 늘리되 최대한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교수는 “각 대학마다 사정이 다른데 우리 교육 당국은 대학의 정원, 수업 과정, 등록금 인상률 등을 일률적으로 규제한다”며 “대학은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정책을 따르고 결국 자율성이 실종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염 위원장도 “대학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지식을 생산해서 판매해야 하는 시대”라며 “대학 기업을 활성화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교수가 연구개발 활성화를 위해 창업을 많이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예 교육부의 관리에서 대학을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전 장관은 “대학은 단순 교육기관이 아니라 미래 혁신 허브 역할을 해야 하는데 교육부가 대학을 강하게 통제하면서 사실상 교육부의 산하기관으로 전락했다”며 “대학을 인문사회과학 출연 연구기관들과 함께 총리실 산하로 편제해 통제를 최소화하고 자체적으로 혁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도 혁신 통해 평생교육, 인재 양성 힘써야=위기를 겪고 있는 대학이 외부 지원에만 기대서는 한계가 분명하다. 단순히 정부의 응급 처방에 기대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 미래 산업 연구 중심 대학, 평생 직업교육 대학 등 생존 플랜을 만들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 강구에도 힘써야 한다. 이 교수는 “기업이나 산업체·학생들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학교 체질을 바꾸고 전공 간 융합을 활발히 하는 대학 구성원들의 의식 개혁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대학들이 성인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평생교육 분야를 확장하고 있는데 다른 대학과 중복되는 커리큘럼을 지양하고 차별화된 교육 프로그램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소장은 “비리가 있거나 자생력을 상실한 대학은 과감히 퇴출하되 다른 대학은 생존력을 키울 수 있도록 (정부가) 일정 수준의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