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주리대는 연간 250만 달러에 이르는 유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지난해 3월 캠퍼스 북쪽에 위치한 건물 8개 동을 철거하겠다고 발표했다. 시민 단체들이 “대학은 혁신과 아이디어를 장려하고 학생들에게 실제 경험을 줘야 하는 곳”이라고 반발했지만 철거는 예정대로 진행된다. 대학 측은 “불행하지만 재정 건전성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며 “재정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대학들도 지난 1980년대 이후 정부의 재정 지원 축소 흐름 속에서 재정난을 겪고 있다. 연간 5만~6만 달러에 이르는 등록금을 받고 동문·기업들의 기부금이 쇄도하는 상위권 사립대들은 여유가 있지만 대다수 주립대는 미주리대와 비슷한 처지다. 과감한 혁신과 투자에 나서지 않으면 대학 순위 하락과 함께 우수 학생을 유치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00년대 들어 대형 주립대는 물론 소규모 사립대들이 ‘선택과 집중’과 ‘파괴적 혁신’을 통해 미국 고등교육 시장에 역동성과 다양성을 제공하고 있어 재정난 속에 생존을 고심하는 국내 대학들에게 시사점을 준다.
애리조나주립대(ASU)는 공립대학 혁신의 대표 주자다. ASU는 일부 전공과목의 경우 100% 온라인 수업을 통한 학위 과정을 운영한다.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온라인 강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학생들의 학습 성과를 극대화하는 맞춤형 학습 솔루션과 ‘적응형 학습’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스타벅스와 협약을 맺어 스타벅스 직원들에게 온라인 강좌를 제공하고 학위를 수여한다. 직원들의 학비는 스타벅스가 지급한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대학을 자퇴한 스타벅스 직원들은 고등교육 기회를 얻고 ASU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수익을 창출했다. ASU는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가 선정하는 ‘가장 혁신적인 대학’에 5년 연속 선정됐다.
ASU의 혁신은 2002년 취임한 마이클 크로 총장의 리더십이 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기존 학과들을 통폐합해 재구조화하는 과정에서 일부 반발이 있었지만 크로 총장은 비전을 제시하고 대다수 구성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20년에 걸쳐 혁신을 이끌어냈다. 4년마다 총장이 교체되는 국내 대학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소규모 대학 중에서는 올린공대와 뱁슨칼리지가 혁신 대학으로 손꼽힌다. 2002년 개교한 올린공대는 프로젝트 중심 교육으로 유명하다. 구체적인 학과나 전공 없이 900여 개의 기업·연구소·비영리단체들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일례로 4학년은 참여 기업이 제시한 문제를 해결하는 종합 설계 팀 프로젝트(SCOPE)를 진행한다. 기업들은 프로젝트를 통해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운 학생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올린공대 졸업생을 매니저 직급으로 채용한다.
올린공대와 인접한 뱁슨칼리지는 경영학 분야에 특화된 대학이다. 세계 최초로 기업가 정신 학부 전공을 독립적으로 운영한 대학답게 맞춤형 창업 교육을 제공한다. 교수진은 대부분 기업 최고경영자(CEO)로 구성된다. 커리큘럼은 철저히 실습 위주로 짜여진다. 1학년 때 20~30명씩 팀을 이뤄 실제 창업을 위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식이다. 뱁슨칼리지 졸업생 10명 중 2명은 창업한다.
이현청 한양대 고등교육연구소장은 “학생 수 감소, 온라인 교육 확산 등 대학을 둘러싼 환경 변화로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고등교육이 위기에 처했다”며 “국내 대학들도 백화점식 운영에서 탈피해 차별화·특성화를 꾀하고 디지털 시대에 발맞춰 교육 내용·방법의 혁신을 꾀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