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한 달간 코스피에서 1조 원 넘게 팔아치우던 외국인이 강한 순매수로 돌아서며 반도체와 금융주 등 대형 우량주를 쓸어담고 있다. 외국인의 이달 순매수 상위 종목을 보면 1~5위가 반도체와 은행주로만 구성됐다. 대신 코스닥 시장에서는 연초부터 이날까지 2조 7000억 원을 팔아치우며 사상 최대 규모의 매도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커지는 증시 변동성 속에서 성장성과 실적 모두를 갖춘 대형 우량주로의 자금 쏠림 현상이 강해지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금리 인상 압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밸류에이션이 비교적 높은 성장주 위주의 코스닥 시장에서 매도하고 코스피 시장에서는 사들이는 움직임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설 연휴 직후인 지난 3일부터 이날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1조 2596억 원을 순매수했다. 외국인은 이날도 코스피를 8377억 원을 사들이며 개인(3117억 원)과 기관(5383억 원)의 매도 공세를 방어했고 2770선 사수의 일등 공신이 됐다. 반면 코스닥 시장에서는 ‘팔자’를 이어갔다. 이날 외국인은 코스닥에서 2730억 원을 팔아치웠고 이달 들어서는 6788억 원을 순매도했다. 특히 외국인은 연초부터 이날까지 코스닥 시장에서 강한 매도세를 이어가며 무려 2조 7768억 원어치의 물량을 쏟아냈다. 이는 코스닥이 개장한 1996년 이후 약 26년 만에 최대치다. 지난해 같은 기간(-4046억 원) 대비 6.8배 많은 물량인 데다 2018년 증시 조정기(-9721억 원)보다 3배 가까이 많은 규모다.
코스닥에서 빠져나간 외국인투자가들의 자금은 SK하이닉스(000660)와 삼성전자(005930) 등 반도체주로 집중됐다. 이달에만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각각 5616억 원, 3659억 원 순매수하며 주가를 각각 7.46%, 2.86% 끌어올렸다. 이들 ‘반도체 투톱’은 지난해 실적은 물론 올해 실적 성장도 예고된다는 점에서 선택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로 인한 부품 공급 차질을 걱정하는 구매자들은 디램 구매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고 성수기를 대비해 미리 구매하고 있다”며 “이에 일부 공급사는 물량 부족 현상을 겪고 있으며 올해 2분기 디램 가격은 기존의 예상보다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금리 인상기 최대 수혜주로 꼽히는 금융주도 러브콜이 집중되고 있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KB금융(105560)(1629억 원 ), 신한지주(055550)(1385억 원), 하나금융지주(086790)(1131억 원 )를 대거 쇼핑카트에 담았다. 금융주는 탄탄한 실적을 바탕으로 최근 주주 환원 정책에 적극 나서며 안정적인 투자처로서 매력이 커지고 있다. 이날 실적 발표를 한 하나금융지주는 지난해 당기 순이익이 전년(2조 6372억 원) 대비 33.7% 증가한 3조 5261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히며 ‘3조클럽’에 첫발을 내디뎠고 신한지주와 KB금융도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4조 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대 실적을 재차 경신했다. 탄탄한 실적과 함께 적극적인 주주 환원 정책도 외국인들의 지갑을 열게 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금융지주는 이날 실적을 발표하며 연간 배당 성향을 26%로 끌어올리는 등 금융주가 주주 환원 정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에도 달러가 소폭 약세 흐름를 나타내고 있는 만큼 외국인의 코스피 유입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달러 인덱스는 지난달 28일 97.270으로 고점을 찍은 뒤 95포인트대에 머물러 있다. 통상적으로 달러 약세 기조가 나타나는 시기에 원·달러 환율이 추가 하락하고 이에 환차익을 노린 외국인의 수급이 개선된다.
서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달러 약세는 국내 증시로 들어오는 외국인 수급을 이끌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이들이 선호하는 대형 정보기술(IT)과 금융, 그리고 경기 민감주 유형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