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여성을 위한 공약은 없습니다.”
10일 서울경제가 만난 8명의 20대 남녀는 모두 이번 대선에서 기억에 남는 여성을 위한 공약이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20대 대선 후보들이 2030세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심쿵 공약’ ‘소확행 공약’을 경쟁하듯 내놓고 있지만 이른바 ‘이대녀(20대 여성)’의 표심을 사로잡을 만한 공약은 없는 셈입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여성 정책을 전혀 발표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윤 후보는 ‘성범죄 처벌 강화’와 ‘출산과 돌봄’ 등에 초점을 둔 공약들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필두로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 군 장병 월급 200만 원, 여성할당제 폐지 등도 내걸었습니다. 소위 ‘펨코 여론(온라인 커뮤니티 여론)’을 바탕으로 민주당 정권에 대한 반감이 큰 ‘이대남(20대 남성)’의 표심을 겨냥한 것입니다.
지난 7일 윤 후보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한 것은 편 가르기 의도가 아니냐’는 질문에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은 불평등한 취급을 받고 남성은 우월적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옛날 얘기”라고 밝혔습니다. 논란에 휩싸이자 윤 후보는 “개인별 불평등과 차별에 더 집중하자는 취지의 발언”이었다고 해명했지만 20대 여성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합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A(27) 씨는 “20대 여성은 유권자 취급도 안 하고 애초에 구조적 차별을 부정하는 후보에게 실망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후보도 덩달아 ‘병사 월급 200만 원’ ‘군 경력 호봉 인정 의무화’ ‘동원 예비군 훈련 기간 단축’ ‘병사 통신 요금 반값’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등을 공약으로 발표했습니다. 뒤늦게 이대녀 홀대론이 나오자 이 후보는 ‘고용평등임금공시제’ ‘육아휴직 급여액 현실화’ ‘데이트 폭력 처벌법 제정’ 등의 공약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지지율 상승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 후보의 형수 욕설, 민주당 인사들의 성 추문 등으로 인해 그의 공약이 이대녀의 표심으로 연결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 후보는 9일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대담에서도 “디지털 성범죄의 30%는 남자”라며 “남녀를 가리지 않고 해결할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여성 혐오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면서 20대 남성의 표심에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그나마 여성이 겪는 구조적인 차별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심 후보는 특히 ‘2030 직장인 여성 공약’을 발표하면서 성별 임금 격차 해소법 제정, 성 평등 교섭 의제 의무화 등을 약속했습니다. 또 채용 절차에서부터 성차별을 예방하기 위해 기업이 성평등담당관을 선출하도록 하고 성차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안 후보는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 반값 공공 산후조리원 설립 등 출산·보육 공약과 성 착취 가담 플랫폼 운영자 처벌 등 디지털 성 착취 공약 등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20대 여성들의 표심이 안 후보와 심 후보에게 몰릴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20대 여성들은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어느 후보를 선택할지 고민입니다. 직장인인 B(27) 씨는 “이번 대선에서 윤 후보도, 이 후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른 후보들 역시 디지털 성범죄 등 여성 안전 관련 공약을 들고 나왔지만 겉만 번지르르한 포장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습니다. 대학을 올해 졸업한 C(25) 씨는 “유력 후보들은 20대 여성 대상 공약의 구체성이 떨어지고 이를 중요 이슈라고 여기지 않는 것 같다”며 “그나마 심 후보가 여성을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페미 논란’ 등 역풍을 맞을까 두려워 후보들이 여성의 삶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는 D(27) 씨는 “(대선 후보들이) 직장 내에서의 임금 차별을 비롯한 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언급하지 않아 실망스럽다”며 “아직까지도 불평등을 겪는 이대녀들의 하소연에 정치권이 귀를 기울이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