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사상 최고 실적을 거둔 은행권에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책을 마련해줄 것을 주문했다. ‘자율적’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지난 2년간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상환을 유예해준 원금·이자만 140조 원 가까이 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또다시 금융권의 팔을 비틀어 ‘부실 폭탄’을 키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확대 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해 “어려움이 큰 소상공인들의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정책 당국 간 협력뿐만 아니라 민간 금융권의 협력도 절실하다”며 “금융권이 자율적으로 나서 소상공인들의 금융 애로를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는 선제적 상생 협력 모습도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는 3월 소상공인 만기 연장, 상환 유예 연장 만료를 앞두고 사실상 은행들에 자율적 연착륙 방안 마련을 주문한 셈이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기록한 상태다. KB국민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2조 5908억 원으로 전년(2조 2982억 원) 대비 12.7%(2926억 원) 증가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도 각각 2조 4944억 원과 2조 3755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달성했다.
시중은행들은 3월 말로 예정된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 만기 연장 및 이자 상환 유예 조치가 다시 연장될 가능성에 대해 당혹감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재연장을 해도 차주들의 상환 능력이나 조건 등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판단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시중 5대 은행이 최근 2년여간 코로나19 지원책의 일환으로 상환 등을 미뤄준 소상공인·중소기업의 대출 원금과 이자만도 139조 원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더군다나 금리 상승기에 소상공인 지원을 이유로 대출 상환의 시기만 늦춰줄수록 되레 부실 폭탄만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재연장돼도 차주들의 금융 비용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본격적인 금리 상승기에 접어든 만큼 빨리 상환을 유도하는 게 장기적으로 낫다”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상환 유예는 일시적 조치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기존 대출자의 채무를 재조정해 현실적인 대출금 상환 계획을 마련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대신 소상공인의 금융 애로를 최소화할 수 있는 보다 현실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상공인이나 저신용자 대출을 위한 금융권 공동 기금 조성이나 대출 보증 재단의 출자 확대 등이 거론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자 유예의 경우 3개월 이상 이자 미납 시 고정이하여신(NPL)으로 분류됨에도 연장 조치가 계속돼 은행의 건전성 측면에서도 부담이 된다”며 “한계차주를 계속 지원하는 방식보다는 자산 건전성을 확실히 분류하고 한계차주는 별도로 사후 관리를 해 리스크를 분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