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카드로 서방국가들을 위협해왔다. 러시아는 ‘D데이’를 하루 앞두고 우크라이나 접경 지대에 배치했던 일부 병력을 철수했지만 긴장은 계속되고 있다. 중국은 최근 대만의 방공식별구역(ADIZ)을 수차례 침범했다. 북한은 올해 들어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 등 7차례나 미사일 발사 도발을 했다.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인 김석우 전 통일원 차관은 16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정권은 미국으로부터 안전 보장과 제재 완화를 얻어내기 위해 도발을 이어갈 것”이라며 “북핵 문제는 한미 동맹 강화와 북한 내부 표현의 자유 확대 등의 방향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촉즉발의 우크라이나 사태를 거론하면서 “요즘 요동치는 국제 정세는 미중 패권 전쟁의 틀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올해 들어 극초음속 미사일을 포함해 미사일을 7차례나 발사했다.
△북한 정권은 경제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실패한 뒤 정권 유지를 위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미사일을 연이어 쏴도 ‘도발’이라는 표현도 쓰지 않고 있다. 남북 관계를 되돌아보면 북한이 합의해놓고도 지킨 것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북한 주민까지 우리 국민으로 생각하고 당근과 채찍을 모두 쓰면서 대처해야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영변 핵 시설의 가동 징후가 보이는 가운데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 가능성도 거론된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미국으로부터 안전 보장, 제재 완화 등의 대가를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실제로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미사일 방어를 위한 우리의 ‘3축 체제’가 북한의 핵과 신형 미사일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데.
△우리도 군사적 대응 노력을 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미 동맹 강화를 우선해야 한다. 우리도 핵을 만들어 대응하자는 얘기가 나오지만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미국의 핵이나 정보 자산을 활용해 북한의 핵·미사일을 제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북한이 도발하지 못하도록 기본 체제를 만들어놓고 북한 주민들 사이에 자유의 바람이 불도록 노력하면 된다. 북한 주민들이 세상의 변화를 알면서 정권의 잘못에 대해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북한 내부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김정은 정권이 예민하게 반응할 텐데.
△과거 서독이 동독에 경제 지원을 했을 때도 공짜가 아니라 빚 형식으로 줬고 그것도 정치범들을 넘겨받는 등 대가를 받았다. 그래서 동독 주민들이 통일 전에 이미 서독과 바깥세상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우리도 경제 지원을 할 때 북한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실정을 알 수 있게 조건을 붙여야 한다. 남북 주민들의 인식에서 너무 차이가 나면 통일해도 힘들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정권과 친해지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로 귀결됐다.
△현 정부는 평화를 내세워 북한을 우호적으로 대했지만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정권 차원에서 많은 이익을 얻었다. 2018년에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개최 등으로 여당은 지방선거에서 엄청난 도움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도 종전 선언을 통해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종전 선언은 결국 평화협정을 맺자는 것으로 주한 미군의 주둔 명분을 무력화해 철군을 초래할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의 과도한 이념 성향이 대북 정책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데.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막말로 위협해도 우리 정부는 쩔쩔맸다. 노영민 전 중국 대사는 신임장 제정 때 인민대회당 방명록에 천자를 향한 제후들의 충성 서약으로 쓰였던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말을 썼다. 문 대통령도 중국 방문 때 중국은 ‘큰 봉우리’에, 한국은 ‘작은 나라’로 비유하면서 중국몽에 함께하겠다고 했다.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갖추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에 인구가 5000만이 넘는 나라의 지도자가 속국 대접을 받을 때와 비슷한 발상을 한 것은 굉장한 부끄러운 일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협박과 중국의 대만 점령 훈련 강화 등으로 국제 정세가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다.
△최근 국제 정세를 신냉전과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큰 틀에서 봐야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 후 유교와 중화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미중 패권 경쟁이 시작됐다. 아편전쟁의 수모를 겪은 뒤 100년가량 지난 1949년에 태어난 중화인민공화국이 2049년 세계의 패자 등극을 목표로 ‘100년의 마라톤’을 뛰고 있다. ‘장쩌민·후진타오 주석’ 시기만 해도 절제했는데 이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질주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주변국들의 반중 정서를 키우고 있다. 우리는 중국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대처해야 한다.
-우리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 게 바람직한가.
△우리의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달하는 만큼 소홀히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중국에도 우리 제품이 없으면 수출하지 못하는 품목들이 있다. 서로 협력해야 하는 관계다. 중국이 국제사회에 통용되는 규범인 상호주의 원칙을 따르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 중국의 강점을 인정하고 협력해야 하지만 자기 규범에 따라 일방적으로 복속시키려고 하면 맞서지 않을 수 없다.
-미중 패권 다툼의 결과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에즈라 보걸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1980년대에 일본의 국력이 세계 최고라고 얘기했다. 당시 일본 땅을 팔면 미국을 서너 번 살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미국은 1985년에 플라자합의를 통해 일본과 독일의 환율을 현실화했다. 그 뒤 일본이 장기 침체로 들어갔고 한국이 일본의 대역이 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이 2030년 즈음 경제 규모 총량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많이 전망한다. 그러나 중국이 시진핑 영구 집권 체제로 가게 되면 마오쩌둥 시대와 비슷해질 수 있다. 독재 요소가 강해지면 장기적으로 경제주체들의 자발적 활동을 죽이게 된다. 빈부 격차 심화와 부정부패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에도 약점이 없는 게 아니지만 정권은 주민들의 동의를 통해 유지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표현의 자유가 인정된 사회는 완전히 썩지 않는다.
-경색된 한일 관계를 풀어가는 방안은.
△한일 관계는 한일 국교 정상화 협상 당시 일본 수석대표의 망언, 1980년대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가 생겼을 때와 비교해 더 심각하지는 않다. 현 정부가 친일·반일 대립 구도를 내세워 국내 정치와 선거에 활용했기 때문에 한일 관계가 나빠진 것이다. 지금은 한미 간 , 미일 간 군사 협력이 이뤄지고 있는데 앞으로는 한미일 협력 관계도 강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자유 진영의 전열을 가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자유민주 진영을 중심으로 번영할 것으로 보는가.
△미국의 패권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유지될 것이다. 1945년 전 세계의 50%가량 차지했던 미국의 경제력이 전 세계의 23~25%로 떨어진 후 그 수준에서 지속되고 있다. 패권적 지위를 가진 미국이 태평양 건너편에 있지만 한반도 주변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우리가 모든 부문에서 한류처럼 창조적으로 계속 발전시켜나가면 중국·일본·러시아 어느 나라든 한국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경제력도 중요하지만 인권, 민주주의, 보편적 가치, 문화 측면에서 동북아 국가 중 가장 스마트한 나라라는 평판을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야 대선 후보들의 외교 안보 정책을 비교 평가한다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한미 동맹을 제일 중시하되 중국 관계는 경제를 중심으로 원만하게 하고 일본에 대해서는 국내 정치에 이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한미 관계를 제일로 삼겠다고 했지만 중국에 대한 ‘3불(不) 정책(사드 추가 배치 불허, 한미일 군사동맹 불참,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 체계 불참)’을 유지해 친중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3불 정책은 옳지 않다.
-국제앰네스티가 한국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등한시했다고 지적하면서 한국 대선 후보들에게 ‘북한 인권 증진’ 공약을 촉구했다.
△운동권 인사들이 국내 앰네스티를 장악하면서 북한 인권 문제 제기가 굉장히 늦어졌다고 볼 수 있다. 호주 연방대법관 출신의 마이클 커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위원장이 2014년 북한 인권 조사보고서를 발표한 후 전 세계가 북한 인권 수준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현 정부는 북한 인권법이 통과됐는데도 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여당은 우리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면서 북한 주민의 알 권리도 막는 ‘대북전단살포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현 정부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를 완전히 무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차기 정부는 서둘러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해야 한다.
-북한 인권과 관련해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북한 주민들이 자기 의견을 얘기하지 못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표현의 자유부터 확대되도록 해야 한다. 북한의 강제수용소를 없애는 것도 중요하다. 강제수용소는 말을 잘못하면 가두겠다고 위협하는 상징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인권 문제 해결에는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결국 인권 편에 서는 쪽이 이긴다.
He is…
1945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제1회 외무고시에 합격한 후 주미·주일 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외무부 아주국장을 역임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의전수석비서관과 통일원 차관을 거치고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빙연구원, 국회의장 비서실장을 지냈다. 그 뒤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원장,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