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혜선의 시스루] '서른, 아홉'이 되면 성숙한 어른이 될까요

[리뷰] JTBC 새 드라마 '서른, 아홉'
손예진, 전미도, 김지현의 워맨스



드라마, 예능의 속살을 현혜선 기자의 시점으로 들여다 봅니다.







'서른, 아홉' 스틸 / 사진=JTBC

삼십 대의 끝에서 사십 대를 바라보는 이들은 성숙과 미성숙을 넘나든다. 안정적으로 삶을 꾸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인간이기에 미성숙하다. '서른, 아홉'은 미성숙한 인간일지라도, 서로 위로받으면서 성장해 나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누군가 이미 겪었고, 누군가는 앞으로 겪을 수 있는 이야기다.


16일 첫 방송된 JTBC 새 수목드라마 '서른, 아홉'(극본 유영아/연출 김상호)은 마흔을 코앞에 둔 세 친구 차미조(손예진), 정찬영(전미도), 장주희(김지현)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작품. 열여덟에 처음 만나 20년간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차미조, 정찬영, 장주희. 어느덧 불혹을 바라보고 있지만 달라진 건 없다. 교복을 입고 떡볶이를 먹던 소녀들은 여전히 떡볶이를 먹고, 친구가 곤경에 처했을 때 함께 싸워 경찰서에 가기도 한다. "누가 너희를 보면 내일모레 마흔이라고 하겠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셋이 함께 있으면 과거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가는 듯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스트레칭을 할 때마다 약간의 곡소리가 나고 운동하기 전에 관절을 걱정해야 된다는 거다.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 각자의 자리에서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과거에 비해 달라진 점이다. 피부과 원장인 차미조는 병원 개원으로 받은 대출을 다 갚았고, 1년의 안식년을 계획하고 연기 선생님인 정찬영은 배우들을 가르치는데 능수능란하다. 백화점 매니저인 장주희도 프로페셔널하게 고객을 응대한다.




사랑은 각양각색이다. 차미조와 김선우(연우진)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세 번 마주치고, 서로에게 강력한 끌림을 느껴 결국 하루밤을 함께 보낸다. 자칫 우연한 만남이 계속되면 서사가 약해질 수 있지만, 멜로 퀸 손예진과 연우진의 섬세한 표정과 미세한 동작들이 설레는 분위기를 형성해 당위성을 부여했다.


차미조와 김선우가 시작하는 사랑이라면, 정찬영과 김진석(이무생)은 끝나는 사랑이다. 20대 처음 만나 사랑을 시작한 두 사람이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김진석은 현재 유부남이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이어오던 정찬영은 김진석의 아내와 마주치고 이별을 고한다. 모태 솔로인 장주희가 첫사랑을 이룰 수 있을지도 기대되는 점이다.


작품은 서른아홉이라는 나이가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청년이라기엔 농익었고, 중년이라고 보기엔 아직 어리다. 인생에서 무언갈 이뤘다고 하기엔 이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엔 조금 늦은 것 같다. 불혹이 주는 압박감도 크다. 불혹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는 뜻으로 세상 이치를 깨닫는다는 말도 내포한다. 서른아홉이 되면 성숙한 어른이 될 거라고 하지만 인간은 늘 미성숙하다.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아이처럼 굴기도 하며 때로는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도 못한다. 세 친구가 시비가 붙으면 싸우고 경찰서에 가고, 차미조가 순간의 분위기에 휩쓸려 원나잇을 한 것처럼.


정찬영과 김진석의 불륜이 특히 그렇다. 김진석이 결혼한 후로 잠자리를 가지지 않았다며 "불륜이 아니"라고 하지만, 정신적 사랑이야말로 높은 의미의 진정한 사랑이다. 육체적 사랑이 없다고 불륜이 아니라고 하는 건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정찬영이 "김진석과 헤어지라"는 차미조의 조언에 화를 내고, 김진석에게 이혼을 종용하는 모습은 미성숙한 인간 그 자체다.




미성숙한 인간일지라도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라면 든든하다. 차미조, 정찬영, 장주희는 장장 20년의 세월을 함께하면서 서로의 버팀목이 됐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고, 자신의 약점도 마음껏 드러낸다. 친구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거침없는 조언을 하기도. 조금 미성숙하면 어떤가. 의지할 수 있는 친구와 함께면 거친 세상의 풍파도 두렵지 않다.


세 여자의 우정을 다룬 건 '서른, 아홉'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 '술꾼 도시 여자들', '지금 우리 헤어지는 중입니다' 등에서도 세 여성의 워맨스를 그렸다. '술꾼 도시 여자들'이 청춘의 우정과 성장을, '지금 우리 헤어지는 중입니다'가 커리어를 담았다면, '서른, 아홉'은 삶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한마디로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입양 가정의 이야기, 시한부 선고 등 휴머니즘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다. 차미조는 유복하고 화목한 가정에 입양 와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으나 내면 깊은 곳엔 늘 상처가 있다. 고등학교 때는 친모를 찾아 나서기도 했고, 서른아홉이 된 지금도 불안함 마음을 안고 산다고 고백한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정찬영의 이야기도 삶과 죽음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묵묵히 죽음을 준비하는 정찬영과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