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갑작스러운 발표라 직원들도 반신반의하는 상황입니다. 10년 가까이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이 위축돼 있다 보니 기대감 못지않게 의구심이 큰 게 사실이죠.”
공공기관의 해외투자 자산 매각 방침을 재검토하겠다는 정부 발표를 접한 자원 공기업 관계자가 전한 사내 분위기다. 정부는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열고 “경영 어려움 등을 이유로 매각하기로 했던 공공기관 투자 해외 자산 중 공급망 측면에서 중요한 자산인 경우에는 매각 적정성을 전면 재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장기화와 미중 갈등 심화 속에 우크라이나발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덮치면서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커진 데 따른 조치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정책 수정을 하는 건 천만다행”이라며 “차기 정부는 정치가 아닌 철저히 경제·안보적 관점에서 자원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급망 측면에서 중요한 자산’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매각 재검토를 언급한 것은 현 정부 들어 처음이다. 이명박 정부의 자원 외교가 부실로 드러나면서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은 ‘적폐’로 낙인찍혔고 박근혜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해외 자산 매각 방침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꾸려진 ‘해외자원개발 혁신 태스크포스(TF)’의 권고에 따라 2018년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공공기관의 모든 해외 광물 자산을 매각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실행에 착수했다. 광물자원공사는 2018년 호주 물라벤 유연탄 광산과 2019년 미국 로즈몬트 구리 광산에 이어 지난해 칠레 산토도밍고 구리 광산, 캐나다 구리 탐사 기업인 캡스톤 지분을 모두 팔아 치웠다.
성급히 매각을 밀어붙인 탓에 ‘헐값 매각’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석유공사가 2009년 7억 달러에 사들였던 페루 석유 기업(사비아페루)은 지난해 236만 달러에 팔아 치웠고 광물자원공사의 칠레 산토도밍고 구리 광산은 투자금의 60%만 받고 ‘손절’했다. 정부가 군사작전하듯 매각을 서두르다 보니 여당 의원조차도 “광물자원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자원 정책의 방향성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할 정도다.
정부가 신규 투자는 외면한 채 자산 매각에만 매달리다 보니 석유·가스의 자원 개발률은 2015년 16%에서 2020년 12%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유연탄은 53%에서 34%, 니켈은 68.9%에서 47.2%까지 곤두박질쳤다. 그사이 전 세계가 자원 경쟁에 나서면서 리튬 가격은 1년 새 6배나 치솟았고 에너지 가격도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에너지 가격은 현 정권의 금기어와도 같은 ‘원자력발전’의 봉인도 풀어놓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올 1월 원전 이용률은 89.4%로 현 정부 출범 이듬해인 2018년 1월(56.2%)과 비교해 오히려 33%포인트 넘게 상승했다. 석탄 발전을 줄이는 대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대체해오던 과정에서 LNG 가격이 가파르게 치솟자 다시 원전 가동을 늘리는 방향으로 돌아선 결과다. ‘탈원전’을 주창해온 정부가 에너지 쇼크에 직면하자 원전의 가성비를 인정한 셈이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문가들의 계속된 경고를 무시한 채 정치적 이념과 원전에 대한 혐오를 토대로 정책을 밀어붙인 결과가 드러나고 있다”며 “차기 정부가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정 정책에서도 임기 말 정부의 뒷북은 이어지고 있다. 추가경정예산 규모를 대폭 증액하자는 정치권 요구가 거세지자 김부겸 국무총리는 14일 “돈을 풀면 물가로 바로 연결되고 금리와도 연관된다”며 “물가가 뛰면 온 국민이 피해를 본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여권의 선심성 돈 풀기 주장에 무기력하게 끌려가던 정부가 뒤늦게 부작용을 인정한 꼴이다. 사실 추경 남발은 “재정수지 악화는 물론 은행의 연쇄 부도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한국개발연구원(KDI)까지 나서서 경고할 정도로 줄기차게 지적돼온 문제다.
문 대통령은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에서 “경제와 안보에는 임기가 없다”며 “마지막까지 우리가 할 일을 하고 다음 정부가 잘 안착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대통령의 당부대로 정부 임기가 석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 5년간의 정책 과오를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오답 노트’를 만들어 차기 정부의 성공적 안착을 돕는 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