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통시장과 지식재산

김용래 특허청장
자신의 노력·노하우·신용 담긴 상호
지식재산으로 등록해야 권리 보호받아
악의적 상표 선점에 소상공인 피해 커
온라인 판매 보편화 속 대응은 필수


대전에서 유명한 전통시장을 방문했다. ○○떡집, ○○분식, ○○야채 등 친근한 상호를 내걸고 갓 찧어낸 떡, 달콤한 꽈배기와 찐빵, 시원한 칼국수,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파는 상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최근 ‘포항 덮죽’ ‘해운대 암소갈비’처럼 다른 사람의 유명한 상호를 자신의 것인 양 사용하고 상표 신청까지 한 사례가 문제가 되다 보니 상호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몇 분의 상인에게 상표를 등록받았는지 물어봤다. “사업자 등록을 위해 세무서에 ‘상호’ 등록은 했는데 같은 것인지?” “바빠서 ‘상표’ 등록을 할 시간이 없는데 지원이 가능한지?”와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상호’와 달리 ‘상표’는 특허청에 신청한다. 등록되면 전국에서 자신만이 그 상표를 사용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사용도 막을 수 있는 독점적 효력이 생긴다. 강력한 효력을 갖는 만큼 요건을 갖췄는지 심사를 거치며 신청과 등록에 비용도 소요된다. 흔히 쓰이는 ‘옛날 떡집’ ‘신선 야채’ ‘유성 칼국수’ 등의 상호는 상표로 등록되기 어렵다. 판매 상품의 성질을 직접적으로 나타내거나 널리 알려진 지명과 판매 상품의 명칭으로만 구성돼서다. 또한 비슷한 상표가 먼저 등록돼 있어서도 안 된다.


자신의 노력으로 유명해진 독창적 상호나 제품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사람이 먼저 상표로 등록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빨리 상표 등록을 해야 한다. 지금은 작은 식당이나 가게도 방송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전국적 인지도를 쉽게 획득할 수 있는 한편 온라인을 통해 도용이나 표절도 간단히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내가 사용하는 상호를 상표로 먼저 등록받는다면 피해 회복이 쉽지 않다. 내가 그간 쌓아온 신용과 명성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이 등록한 상표를 소송을 통해 무력화해야 하고, 그 과정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상표 등록의 중요성은 유럽특허청의 연구 결과에서도 알 수 있는데, 상표를 보유한 곳은 그렇지 않은 곳보다 10%, 상표와 특허·디자인까지 보유한 곳은 최대 33%의 성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상표와 특허·디자인 같은 지식재산이 생산력 향상과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상표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고 할지라도 사업으로 너무나도 바쁜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상표를 개발하고 관련 서류를 준비해 등록을 신청하는 과정이 버거울 수 있다. 특허청은 올해부터 각 지역의 지식재산센터를 통해 소상공인이 손쉽게 상표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사용 중인 상호를 상표로 등록받을 수 있는지 분석하고 상표를 신청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도 지원한다. 상표로 등록받기 어려운 상호라면 새로운 상표의 개발도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지식재산 교육과 홍보를 강화하고 전통시장의 상인 연합회와 협력해 찾아가는 설명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전통시장은 그간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으로 많은 개선이 이뤄졌다. 시장 바닥이 포장되고 주차장도 확충됐으며 전용 상품권도 활발히 유통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비대면 소비가 보편화되면서 이에 대한 대응 또한 필요하다. 전통시장의 소상공인이 온라인 판매에 나서고 있는데, 전국을 판매 대상으로 하므로 상표의 사전 등록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소상공인이 노하우와 신용이 담긴 상호를 법적 권리로 보호받아 안정적인 사업 운영에 도움을 받고, 더 나아가 전통시장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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