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폴 볼커



1979년 10월 6일 폴 볼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기준금리를 15.5%로 한꺼번에 4%포인트나 올리는 극단 조치를 단행한다. 은행 금리는 20%까지 치솟았고 시장에서는 ‘대학살’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볼커를 의장에 지명한 지미 카터 대통령조차 경기 침체 심화를 우려하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켜줬다. 볼커는 이후 3년 넘게 고금리 정책을 고수하며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고물가) 치유에 성공했다.


1927년 뉴저지에서 독일계 이민자 후손으로 태어난 볼커는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과 체이스맨해튼에서 이코노미스트로 일하다가 재무부에 들어가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 차관을 지냈다. 1979년 카터 대통령이 ‘강성 매파’ 볼커를 연준 의장에 지명하려 하자 측근들은 강하게 반대했다. 볼커의 금리 인상이 경기 침체를 깊게 해 선거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카터 대통령은 오일쇼크 등에 따른 초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볼커의 뚝심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볼커는 금리를 남북전쟁 이후 최고인 21%까지 올리며 ‘인플레 파이터’의 면모를 과시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취임 후에도 고삐를 늦추지 않아 1983년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3.2%까지 떨어졌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에 이르는 호황은 볼커의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볼커를 다시 불러낸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볼커에게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의장을 맡겼다. 볼커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대형 은행의 투기 행위를 규제하는 ‘볼커 룰’을 만들었다.


워런 버핏과 함께 투자계 전설인 찰리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이 최근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며 볼커를 소환했다. 멍거 부회장은 인플레이션에 대해 “핵전쟁 외에 가장 큰 위험”이라며 “볼커가 다뤘던 것보다 더 심각하고 고치기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우리 정치권은 돈 풀기에 여념이 없고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리며 국채를 매입하는 엇박자 정책을 펴고 있다. 정교한 거시 정책과 자원·식량 외교 등 다층적이면서도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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