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세수 '펑크' 시대의 대통령

문재인 정부, 세수 풍년 누렸지만
차기 정부는 세입 부족 각오해야
금리 정책으로 경기 살리기도 어려운데
흥청망청 파티만 할 생각인가

다음 달 9일 자정께가 되면 대한민국의 5년을 이끌 차기 대통령이 결정된다. 그는 적어도 몇 달간은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승리감에 도취될 것이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소상공인 등에게 약속한 50조~100조 원 지원금 지급도 지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러나 희열에 취하는 것은 잠시뿐이다. 당장 그가 청와대에 입성하는 순간 “올해 세입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가 올라오기 시작할 것이다. 불과 9년 전 박근혜 정부 출범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출범 후 3년 내내 ‘세수(稅收) 펑크’에 시달릴 정도로 재정 부족에 고통받았다. 지난해에만 60조 원이 넘는 세수 풍년을 냈던 문재인 정부와 정반대 상황이다. 조짐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올 들어 부동산 등 자산 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거래세·양도세 같은 관련 세수가 줄기 시작했다. 기업들도 늘어난 비용 부담에 지난해 같은 사상 최대의 이익을 또 거두기는 쉽지 않다.


이렇게 되면 위기의 냄새를 맡은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같은 신용평가기관들로부터 “한국을 ‘워치 리스트(감시 대상)’에 올리겠다”는 편지가 날아들 것이다. 금리가 오르고 자금 조달이 어렵다는 기업들의 아우성도 시작된다. 취약 계층의 이자 고통도 불어난다. 이때부터는 제 아무리 강심장 대통령이라도 “돈을 마구 꺼내 쓰라”고 지시하기 어려워진다. S&P나 무디스를 ‘적폐’로 몰아 청산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재정을 통한 경기(景氣) 부양이라는 정부의 무기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다.


그렇다고 금리를 내리는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를 띄우기도 어렵다. 미국이 올해만 최소 네 번 이상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돼서다. 기획재정부 1차관이 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해 “인상 속도라도 제발 좀 늦춰달라”고 통사정하는(열석발언권) 굴욕이 연출될지도 모른다. 이 뿐만이 아니다. 공기업을 활용한 우회적 지출 확대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가 물가를 누르기 위해 각종 공공요금을 공기업에 떠넘겨 이미 재무 건전성이 엉망인 탓이다. 올해 적자가 1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전력의 경우 이미 공사채 발행으로 운영자금을 돌려막기 하고 있다.


재정과 통화정책이라는 ‘원투 펀치’가 묶인 정부가 꺼내 들 카드는 결국 규제 완화와 혁신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 때 지지율 하락을 무릅쓰고 공무원연금을 개혁하고 담뱃세를 올리는 한편 ‘대못’ 규제를 뽑겠다고 몰아붙여 부동산 규제까지 푼 배경에는 이런 구조적 고민이 있었다. 지금 대통령 후보들은 덮어놓고 장밋빛 미래만 노래하고 있다. 고통 분담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초(超)혁신 방안을 고민하는 후보조차 보이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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