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성철스님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실천을 통해 성철스님이 되는 길을 따라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런 바람을 담아 지난 10년 간 '선문정로'를 읽고 해설서를 내게 됐습니다."
성철(1912~1993)스님의 역작인 '선문정로(禪門正路)'의 해설서 '정독(精讀) 선문정로'가 출간됐다. 역자인 강경구 부산 동의대 중국어학과 교수는 21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출판간담회를 열고 출간 배경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선문정로는 화두를 근거로 하는 간화선(看話禪) 수행의 전통을 정립하기 위해 1981년에 출간된 성철스님의 법문이다. 1967년 해인사 초대 방장으로 추대돼 동안거 기간 중 백일동안 법문한 내용을 토대로 하고 있다. 다양한 불교 경전을 인용한 책은 성철스님이 탈고 후 "부처님께 밥값을 했다"고 자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해설서가 나온 것은 선문정로가 출간된 지 41년 만에 처음이다. 강 교수는 "선문정로를 정독한 뒤 선문정로야말로 참선 수행자의 바이블이 되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며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기준들을 제시해 수행자가 스스로 자기 수행을 점검해 볼 수 있도록 한 수행 지침서이자 진위 감별서"라고 소개했다.
한국 불교의 수행 풍토가 선문의 정도를 벗어나 있다는 반성에서 출발한 선문정로는 한번 깨닫고 나면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다는 '돈오돈수(頓悟頓修)' 사상을 강조하고 있다. 출간 당시 한국 불교 수행의 주류로 자리 잡은 지눌국사의 '돈오점수(頓悟漸修)' 사상을 정면 비판한 것으로 '돈점(頓漸)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정작 선문정로의 핵심인 참선 수행서로서는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성철스님의 제자이자 출판사 장경각 대표인 원택스님은 "당시 주류가 돈오점수인 상황에서 성철스님의 돈오돈수론에 대해서는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았다"며 "1990년도부터 송광사에서부터 돈오점수론에 대해서 심각한 설전이 벌어졌지만 돈오점수파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돈오돈수 사상에 눈 돌릴 틈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강 교수는 원택스님의 권유로 책을 완독하는 데에만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1012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선문정로 19장 체제를 그대로 옮겨쓴 뒤 각 장마다 선문정로의 인용문 원문과 이에 대한 해설을 달았다.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한문투의 번역문은 한글세대가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썼다. 글자를 생략하거나 바꿀 경우 대괄호를 사용해 문맥과 뜻이 통하도록 했다.
강 교수는 "선문정로는 한국 불교사를 통틀어서 손꼽히는 중요한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의 논의가 돈오점수에 대한 비판 위주로 흘러가면서 제대로 고찰되지 않았다"며 "선문정로는 성철스님 고유한 사상을 위한 철학서가 아니라 수행자로서 우리를 윽박지르는 고함이자 매질"이라고 강조했다.
선문정로의 또 다른 문제는 내용 자체가 어렵고, 많은 부분이 한문투로 쓰인 탓에 접근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강 교수는 “자기 숙제인 화두를 들고 있으면 쉬운데, 단순히 독서의 대상물이 되기는 어렵다”며 "그런 면에서 모두가 최소한 화두 하나씩은 들고 살아가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