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家 출신이 쓴 채근담, 기업가정신 녹아있죠"

[인터뷰]'中 지혜서' 채근담 평역…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저자 홍자성은 상인 가문' 첫 발견
물욕 배제·속세 탈피 권하기보다
도전 정신·인간관계 등 현실적 조언
유독 기업인들 마음에 와닿는 이유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가 지난 21일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퇴계인문관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권욱기자

‘은혜는 박하게 베풀다가 점차 후하게 베풀어야 한다. 처음엔 후하다가 나중에 박하면 사람들은 은혜 입었음을 잊는다.’


‘사업에 실패하고 형편이 쪼그라든 사람은 처음 가졌던 마음이 어땠는지 헤아려 봐야 하고 사업에 성공하고 꿈을 다 이룬 사람은 인생 막바지에 어떻게 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중국의 대표적인 청언소품(淸言小品) ‘채근담(菜根譚)’에 실린 문장들이다. 명나라 말엽 1610년을 전후해 지어진 채근담은 ‘동양의 탈무드’라고 불리는 지혜서다.


흥미로운 점은 채근담의 인기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확산된 게 아니라 일본에서 먼저 대중적 인기를 누린 후 한국과 중국에서도 주목받게 됐다는 사실이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부터 유행했던 채근담이 우리나라에서는 20세기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소개됐다. ‘매일신보’ 연재와 한용운, 조지훈 등의 번역서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또 하나 특이할 만한 점은 기업인들의 ‘채근담 사랑’이다. 일본에서 기업인들 사이에서 먼저 회자됐고, 한국에서도 많은 기업인들이 ‘인생 책’으로 채근담을 꼽는다. 인생 교훈을 담은 고전 명저가 한두 권이 아니건만 왜 유독 기업인들의 마음에 채근담이 깊이 가 닿는 걸까.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가 지난 21일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퇴계인문관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권욱기자

최근 민음사를 통해 채근담을 평역 출간한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가 그 궁금증에 답해줬다. 안 교수는 “저자 홍자성은 중국 안휘성 휘주의 부유한 상인 가문 출신 학자”라며 “다른 학자들과 달리 당대 상업 세계를 잘 알았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조선에서처럼 명나라에서도 상업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던 탓에 상업에 대한 글을 직접 기술하지는 않았지만, 채근담 안에 상인 정신을 녹여냈다는 설명이다. 저자 홍자성이 상인 집안 사람이라는 사실은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다. 안 교수가 이번 집필을 위해 여러 기록물을 찾아 연구하던 중 이를 알아냈다.


안 교수는 5년 전 민음사로부터 채근담 평역 제안을 받은 후 홍자성이 직접 간행한 초간본을 저본 삼아 청담본, 합벽본, 청간본을 모두 비교 분석한 후 주석과 해설을 보태는 작업까지 더해 책을 완성했다. 민음사가 “정본 정역(正本 正譯)”이라고 자신할 정도로 안 교수가 이 책에 쏟은 시간과 노력은 대단하다.


안 교수의 설명대로 상업의 관점에서 채근담을 다시 읽어보면 각 문장의 의미가 더욱 명징해진다. 처세(處世), 섭세(涉世), 출세(出世)에 관한 채근담의 방향성은 확실히 다른 중국 고전들과 다르다. 속세가 어지러우면 자연으로 돌아가 은둔과 무위를 지향하라고 권하거나 속세의 부귀영화가 부질없다고 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물욕과 쾌락을 배격하지도 않는다. 실패하더라도 포기하거나 도피하지 말고 재도전할 것을 권유하고, 인간 관계에 있어서는 지나친 기대를 하지 말고 배신의 가능성을 경계하라는 매우 현실적인 조언을 제시한다. 기업인들이 유독 채근담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책에서는 홍자성의 본래 문장 뿐 아니라 안 교수의 평설이 더욱 우아하게 빛난다. 안 교수는 “책에 들인 노력 중 3분의 2가 평설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고 말했다. 사실 원문장의 의미를 정확하게 옮기는 일은 한문학자에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안 교수는 원문장에 담긴 뜻이 요즘 독자들에게 최대한 깊숙이 전해질 수 있도록 안식년 기간 내내 평설 작업에 집중했다고 했다. 그 결과 아름다운 우리 말에 현대적인 감각까지 살아 있는 채근담이 탄생했다.


마지막으로 안 교수에게 특히 좋아하는 채근담의 정신을 묻자 ‘견딘다’와 ‘주체’라는 단어가 돌아왔다. “견뎌낸다는 뜻의 내(耐)자는 삶을 지탱하는 든든한 표어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힘겹고 험난해도 ‘견딘다’는 말을 꽉 붙잡고 있으면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채근담은 또 주체적인 삶을 강조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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