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9시50분 충남 당진 솔뫼성지 앞. 영하의 추운 날씨에 두꺼운 옷을 껴입은 사람들이 약 200명이 모여 있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기다리는 당 관계자와 지지자들이었다.
윤 후보는 1박2일 서해안 라인 충남·호남 유세 첫 일정으로 이곳을 택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생가인 솔뫼성지를 참배하면서 그리스도의 박애·헌신 정신을 되새기겠다는 취지였다.
이중 지지자로 보이는 약 150명은 솔뫼성지 입구로부터 약 100m 미터 지점까지 한 줄로 서 있었다. 윤 후보와 인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기대감 섞인 얼굴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솔뫼성지 입구 왼쪽에는 ‘국민의 행복은 정권교체입니다’라고 적힌 빨간색 바탕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플래카드 좌우 끝에는 ‘멸’자와 ‘공’자가 적혔고 그 안쪽으로 태극기와 성조기가 인쇄돼 있었다.
오전 10시 윤 후보가 검은색 카니발에서 내렸다. 남색 정장 안에 회색 목폴라를 입은 모습이었다. 일부 지지자가 “충청의 아들” “윤석열 대통령” “파이팅”을 연호했다. 윤 후보는 미소를 머금고 사람들이 늘어선 줄을 따라 걸어가며 주먹 인사 등을 했다.
윤 후보가 솔뫼성지로 들어가자 당 관계자들은 지지자들에게 성지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공지했다. 그럼에도 지지자 이삼십명은 윤 후보를 따라 솔뫼성지에 들어와 윤 후보를 내내 따라다녔다.
윤 후보가 참배를 나온 뒤에도 솔뫼성지 입구에는 수십 명의 지지자들이 줄 서 있었다. 윤 후보는 이들과 다시 인사를 나누었다. 이들은 윤 후보가 카니발을 타고 떠날 때까지 윤 후보 주변으로 밀집해 환호했다.
윤 후보는 이후 당진·서산·홍성·보령 등 충남의 네 개 도시를 찾아 유세 연설을 했다. 그는 이중 두 곳에서 자신이 충청의 아들임을 강조했다. 윤 후보는 당진 연설에서 “충청의 아들 윤석열이 국민의힘과 함께 대한민국을 정상 국가로 바꿔서 경제 번영을 약속드리겠다”고 말했다. 서산 연설에서는 “충청의 아들 윤석열이 여러분의 지지로 정부를 맡게 되면 무엇보다 양심적이고 정직한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제대로 모시고 나라를 정상화시키겠다”고 말했다.
윤 후보가 자신을 충청의 아들로 일컫는 것은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가 충남 공주시 탄천면 삼각리 출생이라는 이유에서다. 윤 명예교수는 공주시 반죽동에 거주하며 공주농고를 다녔다. 윤 후보의 조상인 파평 윤씨 집성촌이 충남 논산에 있기도 하다. 다만 윤 후보 본인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윤 후보처럼 부친 고향이 충청인 사람이 여당 혹은 제1야당 후보가 된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첫번째는 15대·16대 대선주자로 나섰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다. 그의 부친은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이 전 총재는 황해도에서 태어나 전남 담양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충청에서 태어나고 자란 정치인이 거대 양당의 후보가 된 적은 없다. 김종필·이인제는 제3당 주자였다. 안희정은 대선 주자가 되지 못했다. 반기문은 무당 상태에서 불출마 선언을 했다.
그렇다면 충청 사람들은 윤 후보를 충청의 아들로 여기고 있을까. 서울경제가 만난 몇몇 사람들은 “그렇다”고 말했다. 솔뫼성지에서 만난 박찬규(58) 국민의힘 선대본 충청발전특위 위원장은 “윤 후보는 500년 동안 공주(논산)가 부친 고향이고 언론에서 충청의 아들이라고 해서 충청민들이 기대가 많다”며 “우리나라 연고라는 게 외국 이민 가거나 그러면 부모님 고향을 따르지 않느냐. 꼭 여기서 태어나고 학교 다니고 했던 게 아니라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충청발전특위 회원 수가 1만5000명이라고 덧붙였다.
충남 보령으로 8년 전 이사왔다는 부산 출신 김기정(64)씨는 “이곳 사람들이 지금 그런(윤 후보가 충청의 아들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며 “윤 후보가 서울에서 자랐으니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안 했는데 지금은 그런 쪽으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충청 사람들이 충청대망론을 꿈꾸며 윤 후보에게 결집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박씨는 충청대망론에 대해 “응어리진 감정을 해소 한 번 시켜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충청은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해 권력으로부터 소외돼 있다”며 “권력에서 소외된 한이 충청대망론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직에 나가신 분들 고위직 올라갈 때마다 그런 서러움이 있다”며 “충청 사람들이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니다. 공평하게 인재를 등용해달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후보는 충청대망론을 등에 업고 충청에서 보수 후보 역대 최고 지지율을 기록할 수 있을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나섰던 15대 대선부터 살펴보면 보수 정당 후보 개인이 기록한 가장 높은 득표율은 18대 대선 박근혜 후보다. 박 후보는 충남에서 56.4% 충북에서 56.2%를 기록했다. 이는 문재인 후보의 각 43%, 43.3%보다 13%포인트가량 높은 수치였다.
보수 계열 후보 득표율을 합산한다면 17대 대선 때가 가장 높았다. 이명박·이회창 후보가 충남에서 67.5%, 충북에서 65%를 기록했다. 정동영 후보는 각각 21.1%, 23.8%에 불과했다.
최근 여론조사만 살펴보면 윤 후보는 부친의 고향이 위치한 충남에서 상당한 우세를 보였다. 대전일보 의뢰로 조원씨앤아이가 6~7일 실시한 충남도민 801명 대상 여론조사에서는 윤 후보는 47.3%를 기록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35.4%를 11.9%가량 앞섰다. 다만 충북 지역에서는 격차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청주KBS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3~4일 실시한 충북 유권자 1000명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 41.2%, 이 후보 34.4%로 6.8% 앞서는데 그쳤다.(각 여론조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충청의 표심이 윤 후보 쪽으로 서서히 쏠리고 있다는 전언도 나왔다. 김기정씨는 “몇 년 전 보수세가 조금 무뎌진 게 있는데 이번에는 너무나 여권의 폐단이 많으니 분위기가 여기도 거의 넘어가는 중”이라며 “슬슬 끓어오르고 있다. (충청은) 원래 끓는 게 늦다고 한다. 표(시)는 안 하는데 끓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성 유세장에서 만난 김성수(62)씨도 “정권교체 열망이 아주 뜨겁다”고 말했다. 그는 “윤 후보는 정치권에 몸 담았던 사람이 아니라서 정말 나라를 새롭게 바꿔줄 수 있을 거라는 열망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충청대망론과 관련해서는 역풍을 우려해서인지 “지역 감정 때문에 그런 건 자제하고 있다”며 조심스런 태도도 보였다.
실제로 이날 윤 후보 유세장에는 상당한 인원이 모였다. 국민의힘 충남도당은 당진·서산·홍성 유세 인원을 3000명, 국민의힘 서산당협은 서산 유세 인원을 5000명으로 추산했다. 이는 같은 날 전북 군산·익산의 유세 인원이 각 700명·800명인 것과 차이가 크다.
윤 후보는 다음 주 충남 내륙을 찾아 충청민과의 스킨십을 이어갈 예정이다. 윤 후보 부친 고향 공주가 지역구이자 충남총괄선대본부장인 정진석 국민의힘 국회부의장은 서울경제와 통화에서 “(충청민들이) 역대 최초의 충청 연고 직선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고무돼 있다”고 말했다. 또 “충청 사람들이 표시를 잘 안하지만 표가 좀 나올 것”이라며 지난 대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충남·북 득표율은 상회할 것으로 전망했다.
/당진·홍성·보령=조권형 기자 buz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