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시중 금리 오름세로 회사채 시장에 냉기가 확산되는 가운데 기업들의 장기 자금 조달이 한층 어려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대외 리스크가 커지는데 안정적 자금 확보는 어려워 기업들의 투자 및 미래 성장 계획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올해 회사채 시장에서 7년 이상 장기사채 발행 규모는 지난 22일까지 7500억 원으로 전년 동기(1조 6800억 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만기 7년·10년 등의 장기물 회사채를 발행한 기업도 KT(AAA), SK(AA+) 등 11개사로 지난해(14개)에 비해 감소했으며, 특히 신용등급 AA 이상 우량기업이 아니면 장기 회사채 발행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으로 파악됐다. 최근 회사채 발행에 앞선 수요예측에서 AA+ 등급인 롯데케미칼조차 3년물과 5년물은 모두 팔렸지만 10년물에서 미달이 발생해 추가 청약으로 겨우 수요를 확보하기도 했다.
기업들이 신규 투자 및 미래 성장 자금을 확보하는 창구인 장기물 발행이 어려워진 것은 회사채 시장에서 ‘연초 효과’가 사라지고 투자 심리가 크게 약화됐기 때문이다. 국채와의 금리 차이를 보여주는 회사채 스프레드는 1년 전 31.7bp(1bp=0.01%포인트)에서 22일 59.8bp로 2배 가까이 치솟았다. 회사채 금리 상승은 채권 가치 하락을 뜻한다. 올 들어 회사채 시장의 수요예측 경쟁률도 213%로 지난해(624%)에 비해 크게 부진해지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식고 있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며 시장이 장기물 회사채를 외면하자 기업들도 투자 자금 마련보다는 일단 만기가 돌아온 부채를 갚는 데 급급하다. 현대중공업지주(A-)는 다음 달 만기인 7년물 회사채를 2년짜리 자금으로 조달해 상환할 예정이고 SK매직(A+)은 5년물 발행을 계획했다가 그마저 쉽지 않자 3년물 발행으로 선회했다. SK에코플랜트(A-)와 한국콜마(A-)는 회사채 차환 발행을 위해 만기를 기존 3년에서 2년으로 줄였다.
시장에서 만기 회사채 차환 발행이 어렵다고 본 일부 기업들은 현금을 총동원했다. 이달 들어 팜한농(2000억 원)과 기아(2900억 원), GS EPS(1500억 원) 등이 자체 유동성을 현금화해 만기 회사채를 갚았다. IB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기업들의 투자를 위한 안정적 자금 확보는 어렵고 빚부터 갚아야 할 상황”이라며 “미래 성장 계획을 담보할 장기 자금 조달은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