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개인투자자를 위해 ‘증권거래세 폐지’ 공약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이는 농어촌 거주민 1인당 최대 100만 원을 주겠다는 이 후보의 ‘농어촌기본소득’ 공약과 충돌한다. 지난 2020년 기준 농어촌구조개선특별회계(농특회계)의 71.8%를 차지하는 증권거래세를 폐지하면 재원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어서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후보는 최근 주식시장 공약으로 증권거래세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증권거래세 폐지를 공약했다가 ‘주식양도소득세 폐지’로 돌아서자 윤 후보와 차별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후보는 “부자 감세를 위한 주식양도소득세 폐지가 아니라 개미와 부자에게 똑같이 부과되는 증권거래세를 폐지해야 한다”며 윤 후보를 겨냥했다.
이 후보는 증권거래세 폐지로 더 많은 투자자들이 혜택을 본다는 점을 노렸지만 당장 본인의 주요 공약인 농어촌기본소득과 배치된다. 앞서 이 후보는 농촌 소멸을 막기 위해 국가와 지방정부 예산으로 농어촌 주민 약 1060만 명에게 연 60만~100만 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구상을 공개했다. 지급 금액의 절반인 약 3조 원을 책임지는 국가 예산은 균형발전특별회계(균특회계)와 농특회계를 활용하면 지금 예산으로도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증권거래세를 폐지하면 2020년 기준으로 5조 483억 원의 농특회계 중 3조 6157억 원을 다른 곳에서 가져와야 한다. 이 후보는 증권거래세 폐지로 줄어드는 재원을 “금융소득세를 활용해 대체·보완하겠다”고 밝혔지만 세부 내용이 불분명하다. 한두봉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 교수는 “청년희망저축에 수백만 명이 몰리는 상황에서 금융소득세를 늘린다면 실질 이자소득이 낮아져 상당한 국민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후보가 말한 ‘금융소득세’가 오는 2023년부터 부과되는 금융투자소득세를 의미해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농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직 금융투자소득세가 걷히지 않은 상황에서 증권거래세만큼의 세수가 발생할지 확실하지 않다”며 “신설되는 세금이라 검증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증권거래세 폐지는 정부 예산에도 타격이다. 최근 증시 활황으로 증권거래세 세수가 급증하자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안을 짤 때마다 농특회계를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2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추경의 증액분 2조 9000억 원 중 1조 9000억 원(65.5%)이 농특회계로 충당됐다. 김낙회 가천대 석좌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투기적 자본거래 규제와 재정수입 확보 차원에서 금융거래세 부과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며 “최근에는 유럽을 중심으로 주식뿐 아니라 채권·파생상품에까지 금융거래세를 과세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