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열린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마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전격적인 군사작전 개시를 선언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와 하르키프·드니프로·오데사·마리우폴 등 7개 주요 도시에서 연쇄적인 폭발음이 들렸다고 CNN은 보도했다.
러시아 동맹인 벨라루스, 이미 국경을 넘어 진입한 돈바스, 크림반도 등 북동남 전역에서 일제히 포격을 시작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작전의 유일한 목표는 (돈바스 지역의) 주민 보호”라고 했으나 이날 우크라이나 곳곳의 주요 도시 및 군 지휘 시설을 상대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벨라루스 정부 관계자도 “이날 오전 5시께 러시아 정상과의 전화 통화가 있었다”며 “푸틴 대통령은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국경과 돈바스 지역의 상황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키예프의 보리스필국제공항 등 주요 공항이 폭격을 당했다고 전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공군기지를 무력화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에서도 미사일 폭발이 목격되고 굉음이 들렸다. 키예프 전역에는 공습 사이렌이 울렸고 차량들은 줄지어 대피하기 시작했다. 설마 했던 시민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을 시작했다”며 “평화로운 우크라이나 도시들이 공격받고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과 오데사에도 러시아군이 상륙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지역 북쪽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심장으로의 진격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이에 더해 크림반도에서도 공격이 개시됐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우크라이나의 3면을 에워싸고 있던 러시아군이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심지어 미군이 주둔해 있는 폴란드와 인접한 리비우에도 러시아의 포격 경보가 울렸다. 러시아군은 그러나 “우크라이나 곳곳의 군사시설을 정밀 타격하고 있다”면서 “민간인들을 위협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침공 전날인 23일부터 우크라이나 안팎에서는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임박한 신호들이 쏟아져 나왔다. 주요 정부 기관은 사이버 공격을 받았고 키예프 주재 러시아 대사관 직원들이 대피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푸틴 대통령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요식 행위를 밟았다. 절박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통화를 시도했으나 아무 대답도 듣지 못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NBC 뉴스에 출연해 “러시아가 오늘 밤 안에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할 수도 있다”고 예측했고 수 시간도 지나지 않아 실제로 공격이 시작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 직후 긴급 성명을 발표하고 “러시아만이 이 공격이 가져올 죽음과 파괴에 대해 책임이 있다”면서 “전 세계가 러시아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우크라이나와 국민을 계속 지지하고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유럽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도 거세게 러시아를 규탄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무모하고 부당한 공격을 감행했다”면서 “수많은 민간인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비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주요 7개국(G7) 정상들과 이번 사안을 논의하고 러시아에 대한 초강력 제재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미국의 추가 제재안에는 러시아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와 VTB 등 금융기관 제재를 비롯해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 등이 담길 가능성이 크다.
다만 서방 진영의 고강도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미 ‘레드라인’을 넘은 푸틴 대통령이 물러설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는 이날 군사작전 개시를 선언하면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를 추구할 것”이라면서 “우크라이나 정부군 병사는 즉각 무기를 내려놓고 귀가하라”고 촉구했다. 동부 돈바스 지역을 넘어 우크라이나군과의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푸틴 대통령은 또 “소련 붕괴 후 현대 러시아가 세계 최강”이라며 “공격하면 누구도 패퇴시킬 수 있다는 점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