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위 군사강국 우크라, 동네북 전락…어쩌다 이지경까지

[민병권의 군사이야기] 러의 우크라 침공이 주는 교훈
수뇌부 무능·부패 속 경제력 뒷받침 안돼
모병제 실패·물자부족·훈련부실에 병력난
독립초기 78만명 대군서 14만명대 붕괴
전력 현대화 못해 기갑·항공기 30년 넘어
러 눈치보다 나토 가입 골든타임도 놓쳐
한국도 국방개혁·한미동맹 강화 먹구름
차기 정부, 우크라이나 반면교사 삼아야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을 맞아 육군의 주력 전차 'T-64BM 불라트'에 탑승한 병사들이 열병식을 하고 있다. 해당 전차는 지난 1950년대 개발된 옛 소련의 'T-64' 탱크를 기반으로 개량된 모델로 노후화가 심각한 우크라이나군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홈페이지


세계 4위의 군사 대국, 핵 보유 순위 3위. 이는 지난 1991년 옛 소련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할 당시 우크라이나의 국방력 수준이다. 31년이 지난 현재 우크라이나의 군사력 순위는 25위(글로벌파이어파워 지수 기준)로 추락했다. 2014년에는 총 한 발 못 쏴보고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빼앗겼다. 이후 8년간 국방력을 키우겠다고 별렀지만 이달 24일 개시된 러시아의 전면적 침공을 저지하지 못해 하루 만에 수도까지 위협받는 동네북 신세가 됐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비핵화를 선언했으나 이를 보완할 재래식 군대의 현대화·정예화를 도외시했다. 또한 러시아의 눈치를 보느라 서방 선진국과의 동맹 관계 구축에 갈팡질팡하다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회원 가입의 골든타임을 놓쳐 러시아가 침공해와도 병력을 파병해줄 동맹국이 없는 상태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정치권, 군 수뇌부가 모두 안보 불감증에 걸려 러시아의 군사 팽창 위협을 오판하고 무능·부패에 빠져 국방 개혁을 도외시한 것이 오늘날의 굴욕을 불렀다. 이는 주변 핵보유국에 맞서 재래식 군비를 첨단화해야 하고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주저해온 대한민국의 상황과 여러모로 닮아 있다. 따라서 다가오는 대선을 통해 집권할 차기 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재정난으로 자멸한 군사력=1991년 8월 24일 우크라이나 최고의회는 우크라이나군 창설을 결의했다. 우크라이나 영토 내의 모든 소련군을 우크라이나 정부의 통제하에 두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우크라이나 내의 군 규모는 무려 78만 명이나 됐다. 장비 규모도 엄청나 육군의 전차·장갑차는 총 1만 3500대, 공군 항공기는 2800대 등에 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이런 대군을 유지할 만한 경제력을 갖추지 못해 군비를 급격히 축소했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병력은 대외적으로 약 25만 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에 크게 못 미친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올해 1월 26일 발간한 ‘초점:우크라이나군’ 보고서에서 “오늘날 우크라이나 군대는 약 14만 5000~15만 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많은 무기들이 30년 이상 된 구식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나라도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남의 일처럼 말할 처지가 못 된다. 우리 역시 국방 개혁을 외치지만 여전히 병역 자원 부족으로 인력을 완편하지 못한 부대가 적지 않다고 군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아울러 지속적인 신형 무기 개발·획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수의 장비와 물자는 수십 년 된 구형으로 이뤄져 있다.


◇‘징병제에서 모병제’로의 전환 실패=우크라이나는 원래 옛 소련식 징병제 및 예비군 동원제도를 운영했다. 그러나 2014년부터는 나토에 가입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모병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유급병의 비중을 늘려 상비 병력을 확충하고 종국적으로는 오는 2024년까지 징병제를 폐지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정책은 성공하지 못했다. 병사에 대한 처우가 형편없어서 직업으로서 군인이 선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국방 개혁에 대해 자문을 해주던 글랜 그랜트 영국 육군 대령은 지난해 7월 작성한 ‘7년의 교착:우크라이나 군사 개혁의 실패와 미국 대응 방향’ 보고서에서 “병영에 있는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은 맥도날드의 계산원과 같은 월급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로 인해 “65%의 군인들이 첫 번째 계약 후 떠난다”며 직업군인 확충을 통한 점진적 징병제 폐지의 실태를 전했다. 병역 자원 확보난을 한층 부추긴 것은 복무 기간 단축이었다. 2004년의 ‘오렌지 혁명’ 이후 집권한 새 정부는 나토의 권고에 따라 병사의 복무 기간을 기존 18개월에서 12개월로 줄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 군 복무 기간을 급격히 단축해 저출산으로 직면한 병역 자원 부족 사태가 더욱 악화됐다. 이렇게 징병제의 기반을 파괴시켜놓다 보니 대안으로 ‘유급병 점진적 확대→모병제 완전 전환’ 방안을 중장기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직업 병사에 대한 민간 기업 수준의 처우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와 같이 우수한 병역 자원 모집에 실패할 수 있다. 다만 민간 기업 수준의 처우 개선은 다시 국방 예산을 짓누르고, 이는 군의 첨단 무기 확충을 저해할 수 있어 우리 군은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수뇌부는 무능·부패=2014년 크림반도 사태 이후 출범한 우크라이나 새 정부는 나토의 정책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군을 개혁하는 듯했다. 그러나 내실 있는 성과는 아직 요원하다. 우크라이나는 나토와 약속한 개혁 방향에 따라 민간 출신의 안드리 자고로드니우크를 국방장관에 앉히고 개혁을 맡겼으나 얼마 후 해당 장관을 경질했다. 국방 예산도 역주행했다. 우크라이나의 2021년도 국방 예산은 전년 대비 1억 2700만 흐리브냐(약 52억 원) 줄어든 1176억 흐리브냐(약 4조 7931억 원)로 편성됐다. 여전히 군 부대 현장에서는 탄약·물자 부족과 장비 노후화·불량 문제가 터져나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방위산업은 일부 거대 국영기업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어 국방 조달 관련 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회가 2022년도 전력 증강비를 전년 대비 감액 처리해 첨단 군비 확충에 비상벨이 켜졌다. 방산 비리 해결은 아직도 숙제로 남아 있고 주요 비축 탄약 등은 전면전 발발 시 수일 후면 바닥나게 된다. 이런 가운데 정부와 군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북한이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거나 “중국도 우리를 건드리면 큰 피해를 입기 때문에 무력 분쟁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식의 자만에 빠져 안보 불감증을 드러내고 있다. 일부 군 내 주요 요직 인사는 여전히 능력보다는 정권의 코드에 따라 이뤄진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우크라이나군 사격훈련 장면. 아직도 대다수 병사들이 AK계열의 구형소총과 부실한 전투장구류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마저도 탄약 등의 보급이 원활치 않아 실사격훈련은 대폭 축소됐다. (사진출처=미 대서양위원회 홈페이지)

◇훈련 못 하는 부대=병사들의 훈련 부족도 우크라이나군을 약화시킨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모스크바 전략기술분석센터 분석가인 루슬란 푸호프는 우크라이나 국방 개혁의 문제를 다룬 공동 저서 ‘브러더스 암드(Brothers Armed)’ 개정판에서 “(우크라이나) 육군이 매년 실시하는 대대급 실사격 훈련을 진행하는 부대가 한 자리 숫자로 떨어졌다”며 “중대급이나 소대급 훈련을 강조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전차나 장갑차를 이용한 훈련은 거의 못 했다”며 “(공군에서는) 훈련 부족으로 인해 소수의 조종사만이 지상 목표를 공격하는 유도무기 사용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일종의 상근예비군에 해당하는 ‘국토방위여단’의 교육·훈련은 더욱 부실하다. 그랜트 대령은 국토방위여단에 대해 “실제 교육이 거의 또는 전혀 없으며, 예비군은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우리 군도 문재인 정부 집권 후 심각한 훈련 축소 문제에 직면했다.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하는 차원에서 한미연합훈련 중 기존의 대규모 실기동훈련들을 줄줄이 폐지했다. 또한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그나마 남은 실기동훈련도 대대급 이하로만 연중 분산 실시하는 상황이다. 일반 장병은 물론이고 부대 간부들마저 유사시 대규모 연합·합동작전을 통한 북한의 도발 저지 및 반격 작전을 경험하기 힘들어 숙달된 국방 인력 확충이 저해되고 있다.


◇갈팡질팡 안보 동맹=현재 우크라이나의 국방 재건은 나토 주요 회원국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끊기면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서방 진영에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내며 동맹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본격적인 시동을 건 것은 10여 년에 불과하다. 오렌지 혁명 이전에는 친러 성향의 지도자들이 정부와 군·정치권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오렌지 혁명 이후 친서방 성향의 정권이 탄생했지만 러시아계 인구 비중이 높은 동부 지역과 크림반도 등에서는 여전히 지방 당국과 지역 의회 차원에서 러시아와의 안보·경제협력을 지지하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우크라이나는 이처럼 러시아의 눈치를 보다가 2008년에서야 뒤늦게 나토 동맹 의사를 밝혔다. 이에 러시아가 반발하자 주춤하다가 2014년의 크림반도 사태 이후에서야 다시 나토 가입 준비 작업을 본격화했다. 그러나 서방 군대와 연합작전을 펴기 위한 국방 체계와 장비 확보 등 나토 가입을 위한 기준을 목표 시점인 2020년까지 달성하지 못해 여전히 비회원국으로 머물러 있다. 만약 나토 회원 자격을 진즉에 확보했더라면 이번 러시아 침공에 맞서 미국·유럽이 우크라이나에 파병하는 것을 지금처럼 주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군사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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