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안 한다"더니…푸틴, 또 기만술로 우크라 침공

2014년 크림반도 병합, 2008년 조지아 침공 때도 유사 전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연합뉴스

러시아가 처음에는 '증거'까지 제시하며 전쟁 의도가 없음을 적극적으로 주장했지만 특유의 기만전술로 우크라이나를 결국 침공했다.


24일(현지시간) 새벽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특별작전'을 선언하기 이전부터 러시아는 침공을 위한 사전 단계를 한단계씩 밟아나갔다. 러시아는 표면적으로는 병력을 철수시켰다고 선전한 뒤 실제로는 전력을 증강했다. 접경 지역 대규모 병력 배치는 훈련이라며 연막작전을 펼쳤다. 지난 15일 러시아는 병력과 장비가 본진으로 복귀하는 영상을 증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병합한 크림반도에서 훈련을 마친 러시아군 트럭들이 주둔지로 복귀하기 위해 반도와 내륙을 잇는 다리를 건너고 있는 모습으로, 지난 16일 러시아 국방부가 공개한 사진이다. 연합뉴스

침공 일주일 전인 지난 18일에도 러시아 국방부는 성명을 내고 "서부 군관구 소속 전차부대의 병력과 장비를 실은 또 다른 군용 열차들이 예정된 훈련을 마치고 니즈니노브고로드 지역의 영구기지로 돌아왔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 주요국들이 지속해서 침공 우려를 제기하는 동안에도 한사코 이를 부인해 왔다. 오히려 국경 근처에서 이뤄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군사훈련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이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날을 세웠다. 반면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아직 유의미한 규모의 러시아 병력 철수는 관측되지 않았고 되레 병력을 늘렸다고 강조했다.


지난 17일 러시아 매체들은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분리독립을 원하는 돈바스 지역 반군을 연이틀 공격했다고 전했다. 친러 반군이 수립한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은 우크라이나가 선제 포격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는 반군의 자작극이라고 맞섰다.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LPR의 독립을 승인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고조되는 긴장 속에 러시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침공 구실을 만든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리코프에서 군인들이 부서진 장갑차를 살펴보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 장갑차가 교전 중 파괴된 러시아군 소속이라고 주장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이런 전략을 ‘가짜 깃발 작전(false flag operation)’이라고 지적했다.가짜 깃발 작전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공격받은 것처럼 자작해 침공 구실을 만드는 것을 뜻한다.


러시아의 연막작전에는 푸틴 대통령이 직접 주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2일 의회의 해외파병 승인을 받은 뒤 "지금 당장 군대가 돈바스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으나 단 하루 만에 분리주의 반군들의 자칭 독립공화국 두 곳이 군사지원을 요청했고 그다음 날 바로 침공을 개시했다.


사실상 전면전에 해당하는 이 같은 대규모 침공은 오랜 기간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장은 아니다"라는 푸틴 대통령의 언급은 의도적인 기만이라고 보여진다.



우크라이나 남쪽 크림반도의 오푸크 훈련장에서 지난 15일 러시아군이 다연장로켓인 '우라간' 발사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는 지난 2014년 크림반도를 침공할 때도 특유의 기만전술을 썼다. 당시 크림 자치공화국 의회가 러시아와 병합을 결의하자 러시아군이 진입해 점령했다.


이때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휘장이나 부대 마크도 없는 군복을 입은 '미스테리한' 모습의 병사들이 갑자기 크림반도에 나타났다. 러시아 정부는 처음에는 군사적 개입을 부인했으나 이후 이들이 러시아군이라고 인정했다.


14년 전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때도 이 같은 방식이 전개됐다. 당시 러시아는 조지아군이 분리주의 세력인 남오세티야 자치공화국을 먼저 공격했다는 것을 침공 명분으로 삼았다.


러시아는 압도적인 공중·기갑·해상 전력으로 조지아군을 격퇴했다. 조지아군은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나흘 만에 항복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