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이 '근시안적 정책'일 수밖에 없는 3가지 이유[양철민의 경알못]

①유가흐름 낙관하고 신재생 기술발전 속도 과신
②탈원전 외치고 탄소중립 한다는 ‘아무말 대잔치’
③‘에너지무기화’ 흐름에 역행.. 위협받는 에너지 안보

**‘양철민의 경알못’은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0년 넘게 경제 기사를 썼지만, 여전히 ‘경제를 잘 알지 못해’ 매일매일 공부 중인 기자가 쓰는 경제 관련 콘텐츠 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며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유럽연합(EU) 가입국들은 발전 간헐성이 큰 신재생의 단점 보완을 위해 러시아에서 공급받는 천연가스에 에너지원의 상당부분을 의존해 왔다. 이 때문에 러시아가 이른바 ‘잠가라 밸브’를 시현할 경우 EU는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며 일시적 경기 위기를 겪는 패턴이 반복돼 왔다. 독일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강경책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도 이 같이 러시아에 명줄이 잡힌 에너지 문제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같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한국 경제 및 에너지 업계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인 5조860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값비싼 액화천연가스(LNG) 가동을 늘린데다, 정부가 “전기요금인상은 탈원전 때문”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억지로 요금을 동결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탈원전 정책은 EU와 러시아간 사례에서 보듯 한국의 에너지 안보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결국 과장된 원전 위험론에 근거한 ‘묻지마 탈원전’이 후세에 경제·안보 등 전분야에 걸쳐 상당한 피해를 끼치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오늘만 바라보는 근시안적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당시 국제 유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본 반면 신재생의 기술적 진보는 과대평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부터 진행중이었던 글로벌 탄소중립 및 주요국의 ‘에너지 무기화’에 대한 고찰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①유가흐름 낙관하고 신재생 기술 과신한 文 정부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천명한 2017년 국제 유가는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실제 2013년 기준 두바이유는 배럴당 105달러를 기록한 반면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인 2016년(41달러)과 출범 당시인 2017년(53달러)의 유가는 그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당시 미국의 셰일오일 채굴 열풍으로 국제 유가는 더욱 떨어질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실제 미국은 ‘석유 순수출국’으로 전환한데 이어 중동 산유국의 전략적 가치까지 동시에 하락하며 유가 하락론을 부추겼다. 이 때문에 탈원전을 하더라도 에너지 비용 부담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정부는 내다봤다. 여기에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산업까지 활황이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미래 에너지’로 주목받던 수소 또한 조만간 핵심 에너지원으로 기능하며 원전의 빈자리를 충분히 메워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같은 낙관론은 탈원전 5년만에 무참히 깨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두바이유 가격은 현재 100달러를 넘보고 있다. 지정학적 이슈에 좌우되는 유가 급등 문제가 1970년대 오일쇼크 때 처럼 반복된 셈이다.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이상이어야 수지타산이 맞는 셰일 업체들은 수년째 계속되는 저유가와 탄소중립 열풍에 따른 화석연료 시장 침체로 대부분이 시장에서 철수했다. 셰일오일이 공급되지 않으니 유가는 자연스레 뛰었다.


신재생 또한 마찬가지다. 친환경론자들은 반도체 시장의 ‘무어의 법칙’이 신재생 시장에서도 적용되는 것마냥 신재생 예찬론을 펼쳤지만, 태양광과 같은 화학 기반의 에너지 효율 증대는 매우 더디게 진행된다. 지난 1991년 소니가 사상 처음으로 내놓은 ‘리튬이온배터리’의 효율이 30년이 지난 현재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 한다.


풍력도 마찬가지로 말썽이다. 전체 발전의 25%를 풍력으로 조달하는 영국은, 지난해 북해 인근 풍속이 약해지며 전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신재생의 발전 간헐성을 제어해 줄 에너지저장장치(ESS)는 화재 위험성 외에도 막대한 구축비용으로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여기에 물을 전기분해해 생산하는 수소는 생산 비효율 및 저장의 어려움 문제 등으로 아직까지 ‘미래 에너지’로 분류될 뿐이다. 반면 원전은 여전히 LNG 발전단가의 3분의 1 수준으로 전력을 공급 중이며 우라늄 가격이 뛰어도 발전 단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②탈원전 외치고 탄소중립 한다는 ‘아무말 대잔치’

탄소중립 기조 또한 탈원전 수립 시 생각하지 못한 변수다. 다만 해당 변수는 오히려 현 정부가 문제를 더 키우며 되레 원전이 필요하다는 점을 반증하는 빌미가 됐다는 점에서 비판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 기조연설에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상향해 2018년 대비 40% 이상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고 밝히며 ‘탄소중립 선도국가’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당시 산업 및 에너지 업계에서는 “급격한 NDC 상향으로 국내 제조업 경쟁력의 하락이 불가피한데다 향후 블랙아웃(대정전) 또한 빈번할 수 있다”며 반대의사를 명백히 했지만, ‘탄소중립 선도국’이라는 허명(虛名)에 집착한 문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했다.


문제는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석탄 발전 가동을 줄여야 해 무탄소 전력원인 원전 의존이 되레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지난달 원전 이용률은 89.4%로 4년전 이용률(56.2%) 대비 33.2%포인트 높아졌다. 이 같은 원전 이용률은 지난해 12월 수치(91.8%)에 이어 문재인 정부 들어 월간 기준 두번째로 높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일(현지시각)영국 글래스고 스코틀랜드 이벤트 캠퍼스(SEC)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원전 11기의 설계 수명을 연장해 계속 운행할 경우 발전 부문에서만 40.3%의 탄소 감축이 가능하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특별보고서는 화석연료를 파격적으로 줄이고 재생에너지의 적극적인 확대와 함께 2050년까지 원자력을 2010년 대비 2.5~6배 증가시켜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IPCC에 따르면 태양광발전의 생애 주기 탄소배출계수는 1㎾h당 이산화탄소환산(CO2eq) 기준으로 48g(중간값 기준)인 반면 원전의 경우 탄소배출계수가 12g에 불과하다. 원전이 태양광 발전 대비 4분의 1 수준의 탄소만 배출하는 셈이다. 실제 미국과 프랑스, 중국 등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원전 확대를 천명했으며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 까지 원전을 가동 중이거나 신규 가동을 검토 중이다.


③‘에너지무기화’ 흐름에 역행.. 위협받는 에너지 안보

탈원전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에너지 안보화’ 흐름에 역행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난 2017년만 하더라도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중국간의 무역분쟁 격화로 공급망 재편 논의가 한창이었지만 현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밀어 붙였다.


한국의 에너지 해외 의존도는 93%를 넘나들어 글로벌 에너지 가격 변동에 상당히 취약한 구조다. 반면 원자력의 경우 발전 단가 중 우라늄이 차지하는 비중은 8%에 불과하고 나머지 92%는 한국 기술로 구축된 발전 설비 등이 차지한다. 또 원전 1기를 5년간 가동하는데 필요한 연료 저장공간은 20㎡에 불과해 기화 등의 문제가 있는 가스나 적재공간이 많이 필요한 석탄 대비 보관이 용이하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독일·호주·카자흐스탄 등 10개국에서 15년 단위 장기 계약으로 우라늄 원석을 수입 중이며 농축 우라늄은 프랑스·영국·러시아 등 4개국에서 20년 장기 계약으로 구매해 수급이 안정적이다. 러시아나 카자흐스탄 등이 우라늄을 ‘에너지 무기화’ 시킨다 하더라도 수급처가 다양한 만큼 큰 문제가 없는 셈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탈원전에 따른 전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이나 러시아로부터 전력을 직접 공급받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탄소중립위원회의 2050년 탄소 중립 ‘시나리오 B’ 안에는 2050년 전체 전력 소비량의 2.7%가량인 33.1TWh를 동북아 그리드로부터 공급받는다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동북아 그리드를 통해 전력망 연결 대상인 중국·일본·러시아는 언제든 에너지망을 볼모로 삼을 수 있는 국가들이다. 중국은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와 관련해 무역 보복에 나선 후 아직 이 같은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나 러시아와 전력 계통망을 연결할 경우 관련 망이 북한 지역을 지날 수밖에 없어 자칫 남북 관계에 따라 국내 에너지 안보까지 휘청일 수 있다.


여기에 정부는 ‘미래 에너지’ 수소 수급을 위해 칠레나 호주 등에 신재생 설비를 구축한 후, 해당 설비를 통한 수전해로 수소를 확보해 국내에 들여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수소 또한 해외에 의존하는 셈이다. 반면 원전을 수전해 전력원으로 활용해 수소를 확보하는 방안은 일절 검토하지 않고 있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의 ‘묻지마 탈원전’은 급등한 전기요금과 간헐적 블랫아웃(대정전)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무엇보다 글로벌 공급망이 안보 위주로 재편되는 와중에, 에너지 수급의 93%를 해외에 의존하는 나라가 무슨 배짱으로 탈원전 정책을 택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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