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가 있었기 때문에 느낌표가 생기는 거예요. 목마름 없는 지식은 고문이야(‘이어령, 80년 생각’ 중에서).”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가 암 투병 끝에 지난 26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2017년 암 선고를 받은 후 죽음으로 향하는 담대한 여정에 나섰던 그였다. 항암 치료 대신 집필 활동을 택했고 글을 통해 끊임없이 우주와 삶에 대한 물음표를 던진 후 느낌표를 찾아냈다. 넓고 깊은 통찰을 통해 어렵게 얻은 깨달음은 세상과 기꺼이 공유했다. “인간의 삶은 촛불과 같다”고 했던 그의 삶은 마지막 순간 더욱 빛났다.
1933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언론인이자 문학평론가·학자로 활동하며 ‘시대의 지성’으로 불렸다. 이미 20대 초반에 그의 글은 낭중지추였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1956년 문단 원로들의 권위 의식을 질타한 ‘우상의 파괴’를 한국일보 지면을 통해 발표하며 평단에 데뷔했다. 고인의 날카로운 글은 당시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대학 졸업 후에는 1960년 서울신문에서 언론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한국일보·경향신문·중앙일보·조선일보 등을 거치면서 통찰력이 돋보이는 글로 세간에 이름을 알렸다. 1966년에는 이화여대 문리대 교수로 임용돼 강단에 섰고 1990년 초대 문화부 장관이 됐다. 노태우 정부가 기존 문화공보부를 공보처와 문화부로 분리한 후 그에게 문화 강국의 기틀을 세우는 일을 맡겼다. 옳다고 판단을 내리면 물러섬이 없었던 그는 여러 난관과 반대 속에서도 국립국어연구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공방촌, 도서관 업무 이관 등을 강하게 추진했고 끝내 이뤄냈다.
사회적인 직함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글쓰기는 늘 고인과 함께했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0)’ ‘축소지향의 일본인(1984)’ ‘이것이 한국이다(1986)’ ‘세계 지성과의 대화(1987)’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달라진다(1997)’ ‘디지로그(2006)’ ‘지성에서 영성으로(2010)’ ‘생명이 자본이다(2013)’ 등 세상의 흐름을 꿰뚫어 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제언하는 저서를 많이 냈다. 말년에 접어들면서는 글의 중심추가 삶과 죽음, 개신교 쪽으로 옮겨갔다. 딸 이민아 목사와 손자의 연이은 죽음이 신앙을 갖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고인의 글은 단순히 종교적 전도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가 삶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 유한한 존재로서 희로애락을 받아들이고 성숙해지는 법, 죽음을 마주하는 자세 등에 관한 글로 일반 대중에 깊은 울림을 줬다.
‘모두의 스승’이었던 고인의 죽음은 많은 이를 슬픔에 잠기게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통해 “이어령 선생님은 우리 모두의 발굴자이고, 전통을 현실과 접목하여 새롭게 피워낸 선구자였다”며 “우리가 우리 문화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된 데는 선생님의 공이 컸다”고 애도했다. 이어 “선생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셨다. 그것은 모양은 달라도 모두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26일 오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를 찾아 직접 조문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서 우리나라 문화 정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셨다”고 밝혔다.
고인은 생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79), 일본 디자인문화상(1992), 일본 국제교류기금 대상(1996), 대한민국 예술원상(문학부문·2003), 3·1문화상(2007), 만해대상(문학부문·2008), 마사오카시키 국제하이쿠상(2009), 광화문포럼 문화대상(2020), 홍진기창조인상 특별상(2020)을 받았다. 체육훈장 맹호장(1989), 대한민국 청조훈장(1992)에 이어 지난해 10월에는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 교수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5일간 문화체육관광부장으로 치러진다. 다음 달 2일 열리는 영결식 장소는 국립중앙도서관으로 결정됐다. ‘지성의 전당’으로 불리는 도서관은 ‘시대의 지성’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마지막 작별의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