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우리 정부의 외교 전략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신남방·신북방 외교 등 외교 다변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등 미중 균형 외교에 방점을 뒀는데 이 같은 방식이 더 이상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약육강식’의 강대국 논리가 국제사회의 규범과 평화 원칙보다 우선시되는 냉혹한 외교 현실을 직시하게 된 만큼 우리의 외교안보 백서를 다시 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외교 다변화에 치중한 ‘동반자’ 확대보다 유사시 함께 싸워줄 ‘동맹’ 외교의 복원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냉전 구도 속에 신남방·신북방 외교 힘 잃어=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주변국 중심의 기존 외교 지평을 벗어나 동유럽·중남미·아프리카 등 외교 전략을 다변화했다. 이른바 ‘신북방·신남방’ 외교인데 헝가리·몽골·투르크메니스탄 등 그간 우리 외교 안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던 국가와 정상회담을 진행하며 경제협력을 확대했다. 이를 통해 무기 수출 확대 등 일정 부문 성과도 있었지만 국제사회의 조류가 신냉전 체제로 급변하는 흐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을 포기하면서 힘의 공백이 생겼고 그 공백을 러시아 등 강대국이 ‘약육강식’의 논리로 파고들었다”며 “국제 외교 질서는 이미 개별 국가가 자신의 생존을 지키느냐 마느냐의 절박한 문제로 흐름이 변화했는데 우리 정부는 경제적 번영을 위한 대외 정책 중심으로 이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정부의 ‘안미경중’ 외교에 대해서도 신냉전 구도에 적합하지 않은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례에서 보듯이 평화는 안보가 뒷받침돼야 지켜진다”며 “중국과 대립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우리의 안보 지형으로 봤을 때 미중 사이의 외교적 모호함이나 양다리 전략은 옳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문성묵 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 역시 “안미경중 외교는 말로는 성립될지 몰라도 현실은 다르다”면서 “미국이 과거와 달리 국제 이슈에 대해 해결사 역할을 하지 않고 있는 만큼 우리가 미중 중립 외교 노선을 고수하게 되면 안보도 스스로 온전히 책임져야 할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미 동맹 강화…대러 제재에도 적극 동참해야=대외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실이 우리 외교 전략에 명확한 메시지를 준다고 평가한다. ‘자국의 안보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명제가 더욱 확실해진 만큼 현재와 같은 외교적 동반자 확대보다 안보 위기에 함께 맞서 싸울 동맹 강화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지난 1945년 유엔 헌장이 제정된 후 지켜오던 국제 규범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노골적으로 파괴됐다”며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 선언’ 같은 강제력 없는 문서 합의 대신 한미 동맹 강화를 통해 전쟁 억지력을 키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교수는 “국제 외교가에서는 한미 동맹의 후퇴로 인해 한국이 미국의 2순위급 동맹이 됐다는 말을 할 정도로 지위가 떨어졌다”며 “우크라이나도 결국 미국의 우선 동맹 순위에서 밀렸기 때문에 군사적 지원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이미 밝힌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 동참과 관련해서도 소극적으로 일관하거나 ‘뒷북 참여’가 돼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 센터장은 “국제사회에서는 우리 정부가 초기에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다는 의견을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소극적 동향을 탈피하고 국제사회와 발을 맞춰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