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에서 ‘친원전’으로 원자력 정책을 갑작스레 변경하자 원자력 업계가 혼란에 휩싸였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맞춰 원자력 사업과 인재를 대폭 줄이는 등 원전 생태계가 사실상 붕괴된 상황에서 다시 산업을 일으키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27일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국내 유일 원자로 생산 업체인 두산중공업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원전 인력을 대폭 줄였다. 지난 2017년 1827명이었던 원전 인력은 3년 만인 2020년 1468명으로 줄었다. 그나마 미국과의 소형모듈원자로(SMR) 사업을 위해 원전 인력을 남겨뒀다. 원전 부품 업계도 이미 원전 사업에서 사실상 손을 뗀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이후 원전 부품 업체는 사실상 폐업 상태”라며 “이제 와서 사라진 기술을 어떻게 되살리고 인력을 구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원자력 업계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5년간 이어진 탓에 글로벌 시장에서 영역을 확대할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2017년 말 한국이 중국을 제치고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던 영국 원전 사업은 결국 무산됐다. 이후 체코와 폴란드·사우디 원전 수주전에 도전했지만 성과는 딱히 없다. 국내에서 원전 사업을 폐기한 것이 외국 수주에도 악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달 초 유럽연합(EU)이 녹색분류체계인 그린택소노미 초안에 원자력을 포함하면서 전력 수요가 크게 높아진 동유럽을 중심으로 원전 건설이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이지만 지나간 시간을 돌이키기는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환경부는 올 1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서 원자력 발전을 제외했다”며 “국내에서 원전을 인정받지 못하는데 외국에 나가서는 한국 원전이 안전하고 깨끗하니 사달라고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에서 탈원전은 현 시점에서 불가능”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도 정치적 목적으로 원전을 문제 삼았던 5년간 기술을 보유한 많은 기업들은 폐업하거나 업종을 바꿨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정부가 해마다 발간하던 백서에는 정권이 바뀌기 전인 2016년까지 ‘원전을 중지하면 부족한 전력을 공급할 대안이 없다’ ‘당장 원전을 축소하면 국민의 전력 요금 부담이 가중되고 전력 공급의 안전성 저하로 득보다 실이 클 것이 자명하다’고 기재했다.
원전 업계의 하소연을 넘어 더 큰 문제는 탈원전 정책이 ‘에너지 안보화’ 흐름을 역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에너지 해외 의존도는 93%를 넘나들어 글로벌 에너지 가격 변동에 상당히 취약한 구조다. 반면 원자력의 경우 발전 단가 중 우라늄이 차지하는 비중은 8%에 불과하고 나머지 92%는 한국 기술로 구축된 발전 설비 등이 차지한다. 또 원전 1기를 5년간 가동하는 데 필요한 연료 저장 공간은 20㎡에 불과해 기화 등의 문제가 있는 가스나 적재 공간이 많이 필요한 석탄 대비 보관이 용이하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독일·호주·카자흐스탄 등 10개국에서 15년 단위 장기 계약으로 우라늄 원석을 수입 중이며 농축 우라늄은 프랑스·영국·러시아 등 4개국에서 20년 장기 계약으로 구매해 수급이 안정적이다. 러시아나 카자흐스탄 등이 우라늄을 ‘에너지 무기화’시킨다 하더라도 수급처가 다양한 만큼 큰 문제가 없는 셈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탈원전에 따른 전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이나 러시아로부터 전력을 직접 공급받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탄소중립위원회의 2050년 탄소 중립 ‘시나리오 B’안에는 2050년 전체 전력 소비량의 2.7%가량인 33.1TWh를 동북아 그리드로부터 공급받는다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동북아 그리드를 통해 전력망 연결 대상인 중국·일본·러시아는 언제든 에너지망을 볼모로 삼을 수 있는 국가들이다.
여기에 정부는 ‘미래 에너지’ 수소 수급을 위해 칠레나 호주 등에 신재생 설비를 구축한 후 해당 설비를 통한 수전해로 수소를 확보해 국내에 들여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수소 또한 해외에 의존하는 셈이다. 반면 원전을 수전해 전력원으로 활용해 수소를 확보하는 방안은 일절 검토하지 않고 있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의 ‘묻지마 탈원전’은 급등한 전기 요금과 간헐적 블랙아웃(대정전)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무엇보다 글로벌공급망(GVC)이 안보 위주로 재편되는 와중에 에너지 수급의 93%를 해외에 의존하는 나라가 무슨 배짱으로 탈원전 정책을 택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