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군사 우위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진격하던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결사 항전에 가로막혀 주요 도시 접수에 애를 먹고 있다. 그 사이 서방의 제재가 가중되면서 러시아의 고립과 경제 충격이 가시화하는 등 전쟁의 판도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노림수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초기 단계에서 실패하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이번 전쟁이 푸틴 대통령에게 자승자박의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27일(현지 시간) 러시아군은 수도 키예프와 제2도시 하리코프 등 주요 도시를 점령하기 위해 공세에 나섰으나 우크라이나군의 강한 저항에 가로막혀 진격이 지체되고 있다. 수도 키예프를 향하는 러시아군은 이틀째 도심에서 30㎞ 떨어진 곳에 머물고 있으며, 제2의 도시인 하리코프에서 벌어진 시가전에서도 애를 먹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장 고문 올렉시 아레스토비치는 키예프 북서쪽에서 진입을 시도하던 러시아군이 일시 퇴각했다며 “우크라이나 항공기, 포병대, 기계화 여단의 저항으로 러시아군이 진군에 실패했다”고 전했다. 올레 시네후보프 하리코프 주지사도 “군·경·방위군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하리코프의 적들을 소탕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측은 여전히 “작전 시작 이후 우크라이나의 군사 인프라 시설 1067곳을 파괴했다”며 성과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미 국방부 관계자는 “러시아군 일부가 연료와 보급품 부족, 우크라이나군의 강력 및 저항 때문에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다”며 “군사시설을 겨냥했던 러시아군이 민간의 인적·물적 피해를 증가시키는 ‘포위 전술’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CNN에 말했다.
서방의 대러 경제 압박으로 러시아 경제 타격이 현실화하면서 국내 여론도 악화하고 있다. 이날 250억 크로네(약 3조 3275억 원·2021년 기준) 규모의 러시아 자산을 보유한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러시아 자산 매각 결정을 내리고 중립국인 스위스도 러시아 자산 동결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러시아의 돈줄을 옥죄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의 신흥재벌(올리가르히)들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러시아 최대 민간은행 알파뱅크의 설립자인 미하일 프리드만이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전쟁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다. 이번 전쟁은 생명을 앗아가고 수백 년 동안 형제처럼 지낸 두 나라에 피해를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세계 최대 알루미늄 회사 루살의 총수이자 푸틴의 측근으로 알려진 올레크 데리파스카도 텔레그램 계정에서 “가능한 한 빨리 평화 회담을 시작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매슈 서식스 호주국립대 전략국방연구센터 교수는 ABC뉴스 기고에서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 우크라이나 정부가 순식간에 무너질 것으로 오판했다”며 “제재로 인한 내부의 불만이 결합해 (국내에서) 대응이 시작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