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빼닮은 아바타가 눈앞에서 ‘신상’을 입고 런웨이를 누비는 가상 패션쇼가 상상 속 얘기만은 아니죠. 가상 공간에서 다양한 옷을 입어보고 선택·구매하는 패션 시장이 빠르게 열릴 것입니다.”
패션 테크 기업 에이아이바의 김보민(47·사진) 대표는 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과 가상현실(VR)을 결합한 기술로 3차원(3D) 패션 플랫폼의 프로토타입을 선보일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패션과 기술의 융합을 시도하는 김 대표는 원래 여성 의류 사업가다. 패션 기업 퓨전크리에이티브를 세워 디자이너 브랜드 ‘에이벨’을 10년째 운영 중인 그는 아마존·구글 등을 필두로 e커머스와 기술이 접목되는 세계적 추세를 보고 패션 테크에 도전했다. 지난 2019년 에이아이바 설립 후 이듬해 거둔 첫 기술적 성과가 가상 착용(피팅) 애플리케이션 ‘마이핏’이다. 마이핏은 스마트폰으로 앞·옆모습 사진 2장만 찍으면 10초 만에 이용자 신체 사이즈 6~50곳을 알려주고 사이즈에 맞는 옷도 추천해 준다. 김 대표는 “키값만 입력하면 AI·컴퓨터비전 엔진으로 치수를 계산·도출하는데 오차율이 2%대에 그친다는 시험 결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마이핏은 카페24, 쇼피파이, 대구경북섬유직물공업협동조합 ‘스페이스 오즈’ 등에 적용됐고 일부 상품들은 앱에서 결제까지 가능하다. 그는 “피팅에 그치지 않고 신체 치수로 아바타도 만들어 가상 옷을 입혀볼 수 있는 게 강점”이라며 “별도 측정 기구 없이 손쉽게 실시간 가상 피팅이 가능한 모바일 도구는 국내에서 마이핏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아바타 기술을 확장해 3D 플랫폼 ‘비어(VEER)’도 개발했다. 패션 신상품들을 ‘비어’ 웹에서 현실감 있게 감상할 수 있는 일종의 가상 체험 쇼룸이다. 사용자가 아바타, 옷, 런웨이 배경 등을 선택할 수 있고 아바타의 걷기 동작에 따라 입혀진 옷의 자연스러운 움직임까지 연출된다. 그는 “기존 비대면 패션쇼들은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이는 360도 촬영 방식 제작이 대부분”이라며 “비어는 동영상 수준을 넘어 아바타와 상품을 서버에서 불러와 웹에서 보여주는 3D 모델링 방식”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현재 뉴발란스·테일러메이드·아브뉴프랑 등과 손잡고 가상 쇼룸을 운영 중이다. 그는 “마이핏과 연결되면 자신의 아바타에 선택한 옷들을 입히고 패션쇼하는 모습을 즐길 수 있다”며 “올여름 서비스를 목표로 개발 속도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는 2000년대 초 인터넷TV 개발에 참여해 20대 중반에 일찍 성공을 맛본 정보통신기술(ICT) 엔지니어다. 기술에서 패션으로 눈을 돌려 2010년 여성 의류 회사를 설립한 그는 패션 산업의 혁신 기술 필요성을 절감했고 직접 AI·VR 연구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는 “온라인 구매 때 사이즈 선택 실패로 인한 높은 반품률 등 시장에 문제점이 많다”며 “비대면 패러다임 변화에 대비해 실감형 아바타 기술을 더욱 고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 피팅 관련 특허 1건을 등록하고 10여 건을 출원 중인 이 회사는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의 기술 창업 투자 프로그램 팁스에도 선정됐다.
지난해 기술 분야 매출이 전년 대비 3배 증가했다고 소개한 김 대표는 앞으로 사용자를 10만 명까지 늘리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3D 플랫폼으로 패션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싶다”며 “마음껏 상품을 선보이고 싶은 기업에 통찰(인사이트)을 주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