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트리비아] 하얀 등대와 푸른 바다…노스탤지어가 손짓하다

■스코틀랜드 ‘턴베리 링크스’
버려진 땅에 1906년 코스 설립
45홀 중 등대는 ‘에일사 코스’에
왓슨·니클라우스 결전으로 유명
트럼프 인수후 디오픈 빠졌지만
여전히 골퍼의 향수 자극하는 곳

하얀 등대와 코스, 그리고 푸른 바다가 환상적인 광경을 선사하는 턴베리 에일사 코스의 9번 홀. 김세영 기자

골퍼들 뒤편으로 작은 섬 에일사 크레이그가 보인다. 김세영 기자

턴베리 입구. 지난 2014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인수하면서 ‘트럼프 턴베리’가 정식 명칭이 됐다. 김세영 기자

골프 코스 길 건너편에 있는 턴베리호텔. 김세영 기자

아름다운 골프 코스 사진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곳이 스코틀랜드 남서부 해안가에 자리 잡은 턴베리링크스다. 하얀 등대와 푸른 코스, 그리고 바다 건너 아스라이 보이는 에일사 크레이그 섬이 조화를 이룬 광경은 턴베리를 미국 서부 해안의 페블비치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스 반열에 올려놓았다.


턴베리는 스코틀랜드 최대 항구도시인 글래스고에서 남쪽으로 약 80㎞ 떨어져 있다. 에일사(18홀)와 킹 로버트 더 브루스 챔피언십(18홀), 그리고 9홀의 애런까지 총 45홀이 있다. 에일사 코스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등대가 있는 턴베리’다.


등대가 있는 곳은 잉글랜드와 맞서 싸워 스코틀랜드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로버트 더 브루스(1274~1329) 왕이 태어난 ‘턴베리성’으로 추정된다. 등대 앞 해안 절벽에는 여전히 성곽 일부가 남아 있었다. 19세기 말에 만들어진 등대는 당시에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들에게 안전한 항로를 안내하는 불빛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관광객들에게 맛 좋은 음식과 커피·맥주 등을 판매하는 레스토랑으로 변신했다. 등대에는 2개의 스위트룸도 있다.


등대 앞 멀리 보이는 에일사 크레이그 섬은 사발을 뒤집어놓은 모양이다. 코스에서 섬까지는 약 18㎞인데 맑은 날에만 볼 수 있다. 동계 스포츠 컬링에 사용되는 ‘스톤’이 에일사 크레이그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다.


턴베리 지역은 버려진 땅이었지만 해안 철도가 건설되면서 1906년에 코스가 들어섰다. 1·2차 세계대전 기간에 코스는 영국 공군 비행장으로, 건너편 턴베리호텔은 병원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코스에는 지금도 활주로의 흔적이 남아 있다. 12번 홀 그린 옆 언덕에는 전쟁 중 실종된 군인을 기리는 작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에일사 코스에서 가장 유명한 홀은 9번(파3)이다. 티잉 구역에 서면 왼쪽으로 등대가 있고 해안 절벽을 넘겨 그린을 공략해야 한다. 홀의 애칭은 ‘브루스의 캐슬’이다. 대부분의 골퍼들은 샷은 뒷전이고 황홀경에 빠져 카메라 셔터 누르기에 정신이 없다. 챔피언 티잉 구역에 서야 진면목을 볼 수 있다.


턴베리에서는 그동안 디 오픈(브리티시 오픈)이 네 차례(1977·1986·1994·2009년) 열렸다. 1977년 대회 때는 톰 왓슨이 잭 니클라우스(이상 미국)를 1타 차로 이겼는데 2위 니클라우스와 3위의 타수 차이가 10타나 됐다. 뜨거운 태양 아래 둘만의 대결이었다. 그래서 이날의 대결을 ‘백주의 결투’라고 부른다.


왓슨에게는 턴베리에서의 또 다른 기억이 있다. 2009년 디 오픈 최종일 1타 차 선두를 달리다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 뼈아픈 보기를 범해 연장전을 허용한 뒤 스튜어트 싱크(미국)에게 패해 준우승했다. 왓슨은 메이저 최고령 우승 기록을 놓쳤지만 특유의 푸근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는 안타까워하는 취재진과 갤러리들에게 “이게 장례식은 아니지 않느냐”며 에일사를 떠났다. 2015년 턴베리에서 열린 브리티시 여자오픈을 제패하며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한 박인비(34)는 “은퇴 후에는 턴베리를 비롯한 스코틀랜드 코스를 돌아보며 여행하고 싶다”고 했다.


턴베리의 현재 정식 이름은 트럼프 턴베리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4년 인수했다. 이름만 바뀐 게 아니다. 다른 유서 깊은 코스와 달리 턴베리는 상업적이고 화려하다. 클럽하우스에서는 금빛 케이스에 담긴 기념품을 팔고 화장실도 금빛으로 반짝인다. 턴베리에서는 더 이상 디 오픈이 열리지 않는다. 트럼프가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자 R&A는 “트럼프라는 이름이 골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턴베리를 순회 개최 코스에서 제외했다. 그래도 에일사 크레이그는 그 자리에 있고, 거친 바람도 변함이 없다. 턴베리의 하얀 등대도 여전히 골퍼들의 노스탤지어(향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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