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사전투표 개시일 전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손을 잡았다. 야권 후보 단일화에 전격 성공한 것이다. ‘안일화’를 주장했던 안 후보가 윤 후보와 ‘국민통합정부’를 구성하기로 했다. 판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고 했다. 미국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의 포수로 알려진 요기 베라의 명언을 인용한 것이다.
‘전망적 투표(prospective voting)’와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ing)’ 이론을 떠올리게 된다. 특정 후보와 정당의 미래 비전이나 가치를 기대하며 투표하는 것을 전망적 투표라고 한다. 회고적 투표는 현 정권의 국정 운영 결과에 대해 평가하는 투표를 뜻한다. 대체로 총선에선 회고적 투표 성격이 강하지만 대선에선 전망적 투표가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선 과거 심판과 미래 평가가 고루 반영된 투표 행태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요즘 ‘2인3각 경주’처럼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첫 민주 정부는 김대중 정부”라고 규정해 직선제로 선출된 노태우·김영삼 정부를 ‘민주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다. 편 가르기로 민주당 지지층 결집을 독려하는 발언으로 해석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윤 후보의 ‘집권 시 전(前) 정권 적폐 수사’ 발언에 대해 “분노한다”며 사과를 요구해 대선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며칠 전에는 “향후 60여 년 동안 원전을 주력 기저 전원으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감(減)원전’ 공약을 내건 이 후보 감싸기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 후보도 화답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이재명 정부’를 기치로 내걸었던 이 후보는 지난달 “필요하다면 ‘이재명 정부’란 표현도 쓰지 않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를 시도하더니 이제는 범여권 결집을 위해 ‘이심문심(李心文心)’으로 모드를 전환하고 있다. 윤 후보의 ‘적폐 수사’ 발언 이후에는 ‘운명 공동체’처럼 보인다. 이 후보는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해 사과했으나 문재인 정권의 대부분 정책과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 그는 국가 부채 급증을 외면한 채 “나랏빚은 민간의 자산”이라는 궤변을 펴면서 기본소득 등 현금 살포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해선 “그냥 환수하면 되지 무슨 조건을 거쳐서 하겠다는 것인지”라고 말하는 등 안보 포퓰리즘에서도 닮은꼴이다. 독주와 ‘내로남불’에서는 문재인 정부보다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죽고 사는 문제’인 안보와 ‘먹고사는 문제’인 경제 분야의 문재인 정부 성적표는 낙제점이다. 그토록 ‘일자리 정부’를 외쳤으나 되레 고용 참사를 가져왔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장담했으나 그 결과는 집값 폭등과 전세 대란이었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 등으로 ‘소득 주도 성장’을 밀어붙였으나 자영업자 몰락과 청년 일자리 쇼크, 소득 양극화 등 정반대 결과만 초래했다. 반(反)시장적 규제 사슬과 친노조 정책, 편 가르기 정치 등으로 잠재성장률은 2% 선으로 추락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거치면서 나라를 지키려면 싸울 의지와 군사력 강화, 튼튼한 동맹이 필요하다는 점을 실감했다. 우리 정부가 평화·대화 타령을 하면서 종전선언에 매달리는 사이에 김정은 정권은 외려 핵·미사일을 고도화했다. 반면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가 체결된 뒤 한미 연합 야외 실기동 훈련은 사라졌고 우리 군의 기강은 해이해졌다. 북한과 중국·러시아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한 바람에 한미 동맹은 ‘2류 동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앞으로 정권 연장을 시도하는 세력과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유권자들이 총력전을 펼칠 것이다. 범여권은 ‘문재명 정부 시즌2’를 거쳐 ‘20년 집권’을 꿈꾸고 있다.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 교체)’를 바라는 유권자들은 미래를 향한 ‘그레이트 리셋(Great Reset)’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선택과 결단의 시간이 다가왔다. 최후의 순간까지 더 절실한 쪽, 더 뭉치는 쪽이 이긴다. 지지층별 투표율이 막판 변수로 떠오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