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최고참인 5선 정진석 의원은 3일 오전 10시께 아산 온양온천 유세에 나서 “단일화가 이뤄졌다고 유리해졌다? 천만의 말씀이다.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현장에서 사전투표와 대선일을 겨냥해 “여러분, 4일·5일·9일 투표장으로 가야 한다”며 유세 장소에 모인 지지층과 시민들을 향해 투표를 호소했다.
정 의원의 외침은 두 시간 직전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보수 진영 단일화라는 첫 역사를 쓴 환호성과는 거리가 있다. 여전히 표심이 어느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있는 현장의 민심을 반영한 말에 가깝다.
보수 진영, 특히 국민의힘에서는 안 후보만 끌어안으면 다 이긴 선거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심지어 안 후보가 완주를 하는 4자 구도 대선에서도 윤 후보가 승리할 수 있다는 장밋빛 앞길을 예측했다. 서울경제와 칸타코리아가 지난달 27일~지난 1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102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윤 후보는 4자 대결에서 44.1%의 지지율을 얻어 이 후보(34.1%)를 오차 범위(±3.1%포인트) 밖에서 앞섰다. 무엇보다 윤 후보로 단일화가 성사되면 지지율은 49%까지 뛰어 이 후보(38.3%)를 더욱 압도했다. 윤 후보로 보수층(82.1%)이 결집하고 37.3%였던 중도층의 지지도 44.8%까지 높아지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선거 여론조사 공표(2일까지 조사 기준) 마지막 날인 이날 쏟아진 여론조사는 장밋빛 길로 가던 야권을 험로로 안내했다. 사전투표 하루 전, 본투표 5일을 앞둔 시점에도 민심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단일화만 하면 압승할 것이라고 예측됐던 민심은 순식간에 양자 구도로 재편됐다.
중앙일보의 의뢰로 엠브레인퍼블릭이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조사한 결과 윤 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섰을 경우 지지율이 47.4%, 이 후보 41.5%로 나타났다. 두 후보의 격차는 5.9%포인트로 오차 범위(±2.2%포인트) 밖이었지만 압승을 기대했던 예측과는 거리가 있다. 한국경제가 입소스에 의뢰해 1~2일 진행한 조사에서는 윤 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가 됐을 때 지지율이 48.9%, 이 후보는 42.8%로 나왔다. 오차 범위(±3.1%포인트) 안에서 접전하는 결과다. 전문가들은 단일화로 지지율이 양쪽의 합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오판이라고 꼬집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정권 교체를 원하는데 그렇다고 보수 쪽에 손이 가지 않는 유권자들이 빠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진단은 여론조사상 수치와도 맞아떨어진다. 입소스의 조사를 보면 안 후보의 지지층을 분석한 결과 44.9%가 윤 후보로 갔지만 25.1%는 이 후보 쪽으로 표심이 옮겨 갔다. 중앙일보와 엠브레인퍼블릭의 조사에서는 안 후보의 지지층 가운데 이 후보로 마음을 옮긴 지지층이 31.2%로 윤 후보(29.2%)로 향한 표심보다 2%포인트가 많았다. 수치가 아니라 현장에서도 안 후보의 지지층이 요동치고 있다. 국민의당 당원게시판에는 이날 ‘탈당을 신청한다’ ‘10년간의 지지를 철회한다’는 글이 쏟아졌다.
여기에 더 큰 변수도 있다. 희박하지만 진보 진영이 여권 단일화를 이룰 때다. 문화일보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1~2일 전국 성인을 대상으로 단일화 상황을 조사한 결과 윤 후보와 이 후보가 각각 단일 후보로 나섰을 때 지지율이 윤 후보 45.9%, 이 후보 45%로 집계됐다. 양자 대결이 되면 윤 후보가 1%포인트 내에서 접전하는 초박빙의 결과가 나온 셈이다. 보수와 진보 진영의 표가 각각 결집한 결과다.
결국 남은 선거 기간 여야는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했거나 단일화로 안 후보를 이탈한 중도 표심을 잡아야 승리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양당이 싫어서 안 후보를 지지했던 표가 이 후보로 갈 수 있다”며 “누가 얼마나 더 유리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관측했다. 신 교수는 단일화를 한 야권을 향해 “(승리하려면) 이탈한 이들의 마음을 절반 정도는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