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이] '소년심판'에 4명의 판사가 등장하는 이유

[리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심판'
2월 25일 공개



오늘 영화는 이거! '오영이'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소년심판' 스틸 / 사진=넷플릭스

수년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소년법을 폐지해 주세요’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춰주세요’ 등의 글이 올라온다.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청소년 발달 정도, 사회적 인식 수준에 맞춰 적정 연령을 결정하겠다”며 촉법소년 상한을 낮추겠다고 하는가 하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촉법소년 연령을 현재 만 14세에서 12세로 낮추는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하는 등 앞다투어 소년법 개정안을 공약에 넣는다. 이는 더 이상 소년범들을 향한 솜방망이 처벌에 부당함을 느끼는 이들이 소수가 아니라는 것을 방증한다.


이처럼 소년법 폐지 및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높지만, 찬반 논란으로 나뉘는 것도 여전하다. 반대하는 이들의 입장은 “폐지 혹은 촉법소년 연령 하향만이 실효적인 대안이 아니”라는 것. 전문가들은 촉법소년의 범죄 비율은 실제로는 낮은 편이고, 아직 미성숙한 소년들의 처벌에만 집중하다 보면 재기할 기회를 잃게 되고 결론적으로 범죄율이 줄어들지 않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 판사 정원 3,300여 명 중 전국 소년부 판사는 약 20여 명뿐인데, 이들이 매년 3만 명 이상의 소년범들을 만나야 한다는 구조적 문제도 꼬집는다.


쉽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이 문제에 ‘소년심판’(극본 김민석/연출 홍종찬)은 소년부 판사들을 통해 생각의 범위를 넓혀준다. 극 중 4명의 판사들은 각자 다른 신념과 주관을 가졌다. 자연스레 소년범을 바라보는 시선도 제각각이다. 작품은 답을 정해놓고 시청자에게 주입하기 보다, 이들의 시선을 고루 보여주며 시청자들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이때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신조뿐 아니라 충돌하면서 겪는 고뇌들, 엮여 있는 관계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심은석(김혜수)은 “소년범을 혐오한다”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판사다. 소년범들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갱생이 안 되는 존재라고 여긴다. 그 나이에 ‘감히’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최고 처분인 10호 처분만 내리는 걸로 유명하기도 하다. 이런 심은석의 태도는 얼핏 소년법 폐지론자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심은석이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건 이유가 있다. 과거 소년범들에 의해 아들의 죽음을 맞이해야 했기 때문. 그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처참하게 죽었는데도 가해자들이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3분 만에 재판을 끝내는 나근희(이정은) 판사의 모습에 충격받은 과거가 있다. 심지어 재판이 끝나고 웃으며 지나가는 가해자들의 얼굴을 마주한 것은 평생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이후로 그는 피해자의 입장을 헤아리는데 더 힘쓰려 한다.




차태주(김무열)는 심은석과 정반대의 신조를 가진 인물이다. 그는 소년범들에게 기회를 주는 건 판사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게 법정의 역할이고, 기회와 관심을 주면 그들도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오히려 그들을 소년범으로 만드는 환경과 사회 등 구조에 대한 불신이 크다.


차태주는 자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그들에게 더 공감한다. 어린 시절 가정 폭력에 시달리며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소년원 신세까지 지게 됐지만,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준 판사 덕분에 바르게 자랄 수 있었다. 자신도 그래서 판사까지 됐고, 그 역할을 위해 힘쓴다. 이런 모습은 단호하기만 했던 심은석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하지만 때로 사건을 냉철하게 바라보지 못해 심은석에게 꾸지람을 당하기도 한다.




강원중(이성민)은 방송 출연으로 유명해진 스타 판사. 정계 진출의 야망까지 품고 있다. 겉보기엔 유명해지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그는 정계로 진출하기 전 마지막 재판에 자신의 아들이 연루된 사건이 배당되자 결국 중립을 지키지 못한다. 눈앞에 있는 꿈이 엎어질까 봐, 줄곧 냉정함을 지켜오던 자세를 벗어나 부장판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사건을 은폐하기까지 한다.


겉보기와 달리 강원중이 22년간 재판장에 설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소년법의 초점은 교화’라는 신념 덕분이다. 알고 보니 차태주를 바른길로 인도한 판사도 강원중이다.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는 이유도 소년법의 문제는 소년범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고. 하지만 ‘수단이 탁하면 목적도 오염된다’고 했던가. “아이들을 위한 법을 왜 아이들을 밟고 개정합니까?”라는 심은석의 말에 그제서야 자신의 오판을 알아차린다.




나근희는 현실적으로 법정을 운용하는 인물이다. 턱없이 부족한 판사에 비해 매일 사건은 늘어가는 비효율적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만들려면 재판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사적인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는 신념은 잘못 적용돼 피해자의 고통을 고려하거나 소년범에게 죄의 무거움을 알려주는 데 관심 갖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그는 이에 반해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파고드는 심은석이 못마땅하다.


나근희가 소년 범죄를 바라보는 그릇된 시선 때문에 심은석의 인생에 영향이 미쳤던 것처럼, 심은석은 나근희를 변화하게 만든다. 그는 나근희가 일의 속도 때문에 수없이 많이 놓쳐버린 아이들과 피해자들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가장 무겁고 책임감 있게 잘못한 아이들을 꾸짖고 깨닫게 하는 것이 법원의 역할이라고 일갈한다.




작품은 소년범 문제가 흑백 논리로 나뉠 수 없다는 것을 꾸준히 강조한다. 어느 한 명의 시선이 옳다고 조명하지도 않는다. 단지 조금씩 엇나간 시선을 갖고 있는 이들이 겪는 실수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또 어른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걸어가는 방향이 달라진다고, 어른들도 저마다 하나씩 흠을 갖고 있어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치유해 주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네 명의 판사의 시선,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놓칠 수 없는 것이다.


심은석의 입을 통해 이야기하는 건 모든 중심에는 피해자가 있다는 것이다. 소년의 죄만 보고 ‘왜 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았던 이들에게 가정 폭력 때문에, 자녀 부양 능력이 없는 부모 때문에 많은 위험과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 곳에 떠밀리게 된 소년들의 모습을 비춰준다. 너무 많은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피해자가 생겨나고, 피해자는 또 가해자가 되는 구조의 반복이다. 심은석은 말한다.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말을 거꾸로 하면 ‘온 마을이 무심하면 한 아이를 망칠 수 있단 뜻도 된다’고.




+요약


제목 : 소년심판(Juvenile Justice)



연출 : 홍종찬



극본 : 김민석



출연 : 김혜수, 김무열, 이성민, 이정은



제공 : 넷플릭스



제작 : 길픽쳐스, 지티스트



분량 : 10부작



공개 : 2022년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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