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연합(EU)의 난민 정책에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지금까지 EU는 중동·아프리카 지역에서 들어오는 난민에 대해 엄격한 난민 심사 요건을 제시하며 사실상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다. 국제 인권단체의 보고에 따르면 EU는 외부 국경 지역에서 난민을 일상적으로 강제 송환해 왔다. 또한 EU 국가에서 중동·아프리카에서 온 난민이 망명권을 얻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에서 피란민이 단기간에 대거 EU 국가로 몰려들자 EU는 적극적 수용 의사를 밝혔다. 유엔은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전면 침공한 지 한 주 만에 우크라이나인 100만 명이 국경을 넘어 폴란드, 루마니아 등 인근 국가로 국경을 넘어 간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유엔은 최대 400만 명이 우크라이나를 탈출할 것으로 내다보면서 더 증가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3일(현지시간) 열린 EU 내무장관 회의는 러시아의 공격을 피해 EU 회원국으로 오는 우크라이나 피란민에게 거주권 등 보장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앞서 EU 집행위원회는 피란한 우크라이나인에게 빠르고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일시 보호 명령’ 제도를 가동할 것을 제안했다. 이 제도가 가동되면 우크라이나 피란민은 최장 3년간 EU 역내에서 거주 허가를 받게 되며 노동시장에 접근할 수 있고 사회서비스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EU가 이처럼 신속하게 피란민 수용 정책을 마련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피란민이 가장 많이 넘어온 폴란드의 입장 변화는 극적이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피란민 150만 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했다. 폴란드는 전쟁 발발 이전부터 피란민 유입에 대비해 수용 시설을 준비했다.
폴란드는 지난해 벨라루스가 중동 지역 이주민과 난민을 데려와 폴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국경으로 내몰자 폴란드는 군경까지 동원해 강력하게 이들의 국경 통과를 막았다. 지난해 8월 폴란드 정부는 국경을 넘으려는 이주민과 난민을 즉각 강제 추방하고 망명 신청을 거부하도록 하는 난민 관련법을 제정했다. 폴란드는 2015년 EU 회원국이 시리아 난민을 분산 수용하기 위한 난민 강제 할당을 거부하기도 했다.
폴란드뿐 아니라 과거에는 난민 수용을 거부했던 헝가리와 루마니아도 우크라이나 피란민엔 관대하다. 헝가리는 자국으로 들어오는 우크라이나인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루마니아는 우크라이나인 50만 명을 받아들일 방침이다. 독일도 이들 동유럽 국가를 거쳐 독일로 들어오는 우크라이나인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
EU와 EU 회원국이 난민 정책에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경우가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단 우크라이나는 유럽 국가로, 우크라이나인은 이전에도 대부분 EU 국가를 무비자로 90일간 여행할 수 있었다.
이런 자격 덕분에 우크라이나인은 피란 생활 동안 머무를 국가를 선택할 수 있어 인원이 분산돼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등 우크라이나 접경 EU 국가의 부담은 줄어들 수 있다. 아울러 EU의 이런 변화는 러시아를 규탄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겠다는 EU의 단합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여준 EU의 피란민 수용 정책이 향후 EU 난민 정책의 변수가 될 가능성은 높아보이지 않는다. EU는 최근까지 난민에 대한 장벽을 더 높였다. 중동,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난민의 유럽행이 계속되는 가운데 EU 회원국은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물리적 장벽을 설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