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로부터 우크라 구한다" 러 언론이 전하는 침공 소식 [글로벌체크]

[김연하의 글로벌체크]
우크라서 사상자 등 피해 계속되지만
일부 러시아인, 민간인 공격 아예 믿지 않아
러 매체, '침공' 아닌 '특별 군사 작전'이라 주장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FP연합뉴스

지난달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5일(현지시간) 열흘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루간스크)에서 시작된 러시아의 포격은 최근 하르키우(하리코프)와 헤르손, 마리우폴 등으로 점차 범위를 넓히고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 이미 수백명의 우크라이나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커지는 피해 규모에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 등 서방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서는 연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도 열리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도 이 같은 시위가 일어나면서 수천명이 경찰에 구금되기도 했는데요, 이런 가운데 일부 러시아인들은 여전히 이 같은 참사가 우크라이나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믿고 있다고 합니다. 이 같은 현상은 러시아 관영매체 때문에 나타나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번 ‘김연하의 글로벌체크’에서는 러시아 관영매체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소개합니다.



■포격당하고 있다 말했지만…"나치로부터 우크라 구한다" 반복만


"러시아에 계신 부모님에게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과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부모님은 나를 걱정하면서도, 여전히 러시아군은 절대 민간인을 목표로 삼지 않을 것이라며 그런 일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인들을 죽이는 것은 우크라이나인들이라고 답했습니다."



3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시내가 포격으로 폐허가 된 모습. EPA연합뉴스

이는 최근 러시아의 포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 거주하는 25세의 올렉산드라가 영국 BBC에 전한 말입니다. 하르키우에 사는 올렉산드라와 달리 올렉산드라의 어머니는 러시아 모스크바에 거주하고 있는데요, 올렉산드라는 포격을 입은 하르키우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까지 보냈지만 어머니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엄격하게 통제당하는 러시아 언론이 보도하는 내용으로 인해 러시아인 친척들이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을 다르게 이해하는 것으로 보인다는게 그녀의 설명입니다. 올렉산드라는 "엄마가 러시아 TV를 그대로 인용했을 때 너무 무서웠다. 러시아 매체들은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있고 사람들은 이를 신뢰한다"고 털어놨습니다. 올렉산드라의 어머니만 하더라도 러시아 관영 TV 채널에서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죠. 올렉산드라는 "부모님은 여기 우크라이나에서 어떤 군사 행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서도 "부모님은 '러시아인들은 너를 해방시키려고 왔다. 무언가를 엉망으로 만들거나 너를 건드리지 않고, 오직 군사기지만은 목표로 하고 있다'고만 말한다"고 토로했습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키예프)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미카일로도 올렉산드라와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미카일로의 아버지는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는데요, 현재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전한 그에게 아버지는 "전쟁은 없으며, 러시아인들이 나치로부터 우크라이나를 구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는 "내가 여기 우크라이나에 있고 내 눈으로 모든 것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는 나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군 포격에 사망자 발생해도 보도 안해


BBC는 올렉산드라와 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와중에도 포격이 계속됐다며, 하지만 러시아 관영 언론에서는 하르키우의 주택가를 포격한 사실 등은 보도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오히려 러시아 언론들은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은 러시아군이 아니라 이들을 인간 방패막이로 사용하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키이우 TV 타워에 대한 침공도 러시아 관영 매체는 우크라이나에 책임을 돌립니다. BBC는 러시아 관영방송의 진행자들이 최근 침공과 관련해 "가짜 장면들이 인터넷상에 계속 유포되고 있다"고 말하거나 우크라이나군이 돈바스 지역에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발언했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이들은 러시아에서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이고 있는 '특별 군사 작전'과 과거 소련이 나치 독일을 상대로 벌였던 전투 사이의 역사적 유사점에 대해서도 보도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모스크바 등에서 이뤄지는 반전 시위 등은 보도되지 않고 있죠.



3일(현지시간) 폴란드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이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특히 러시아 국영·관영매체는 이번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쟁'이나 '침공', '공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해방 특수작전'으로 칭하고 있습니다. BBC는 전쟁 등의 단어를 사용하는 러시아 언론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군인들의 행동에 대해 고의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것으로 규정돼 차단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더해 러시아 의회는 전날 러시아군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위를 한 이들에 대해 최대 징역 15년형을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여기에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전쟁’이나 ‘침공’이라고 말하는 것도 해당됩니다. 이미 러시아 검찰은 이번 사태를 ‘침공’이라고 칭한 러시아의 라디오 방송국과 독립 방송사의 방송을 중단시킨 상태입니다.



■언론인 살해·방송 불허로 반대 목소리 없애버린 푸틴


사실 러시아는 이전부터 극단적인 언론탄압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지난 2018년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름(크림)반도 병합 등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판하던 언론인 아르카디 바브첸코가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괴한이 쏜 총을 맞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우크라이나에서는 살해의 배후에 러시아 정부가 있다고 주장했으나, 오히려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의 치안을 비판했죠.


이 이전에는 체첸 사태 등을 지속적으로 보도하며 푸틴 대통령을 비판했던 언론인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가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러시아 반정부 성향 신문 ‘노바야 가제타’의 공동설립자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수상소감으로 "이번 노벨평화상은 내가 아닌 노바야 가제타와 (신문에서 일하다) 살해된 기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이 밖에도 푸틴 대통령은 언론사 사주에 대한 강도 높은 비리 조사를 벌이는 등 범죄 혐의를 발견해 매체를 인수하거나 방송을 불허하는 방식으로도 자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없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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