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일군 집·논밭 2시간만에 잿더미…"가슴까지 타들어가"

■여의도 면적 53배 손실·7300여명 대피…현장 가보니
헬기소리·소방차 뒤섞여 아수라장
동네주민들 대부분 고령의 농사꾼
새까맣게 탄 집 바라보며 망연자실
"몸만 간신히 나와…" 눈물 쏟아내
갈 곳 잃어 임시 대피소서 새우잠
"제대로 보상받아 빨리 돌아가고파"

6일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의 한 마을 뒷산에서 화재로 인한 연기가 발생하고 있다. 사진(삼척)=박홍용 기자

산불 피해 주민이 6일 강원도 동해시 만우동의 전소된 집 주변을 망연자실하게 살피고 있다. 사진(동해)=강동헌 기자

6일 강원도 동해시 산불 현장 위로 헬기가 바쁘게 지나가고 있다. 사진(동해)=강동헌 기자

“70년 평생 일군 집과 논밭이 2시간 만에 전부 잿더미가 됐어요. 올해 농사를 위해 감자와 옥수수 씨앗도 사 놓았는데 가재도구고, 비닐하우스고 전부 타 버렸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강원도 동해시 만우동 주민 최 모 씨)


“동네에 9채의 집이 있었는데 하루 만에 7채가 타 버렸고 제가 일구던 수천 평 논밭도 전부 잿더미로 변해 버렸어요. 주민 대피소에서 빨리 나가 사고 현장을 정리하고 싶어도 불이 아직 꺼지지 않아 가슴만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온양1리 주민 홍 모 씨)



초대형 산불로 6일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 마을 전체가 폭격을 맞은 듯 모조리 불타 버렸다. 한 이재민이 처참하게 무너진 집을 돌아보고 있다. 그는 "모친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 한 장 남지 않고 모조리 불에 타버렸다"고 말했다. 울진=오승현 기자

6일 오전 서울경제 기자들이 방문한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 헬기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마을 주민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화마가 삼켜 버린 마을 뒷산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산림청 헬기는 끊임없이 인근 하천에서 물을 실어 산에 뿌렸지만 바람이 너무 거세 불씨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주택 앞까지 내려온 불씨를 잡기 위해 소방차가 출동했고 비상용 펌프 차량, 통신 업체 차량 등이 뒤섞여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상황이었다.


이날 오후 6시 현재 이번 산불로 피해를 입은 산림면적은 1만 5420㏊로 여의도 53개가량이 모인 규모다.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울진 388개 등 463개 시설이 소실됐고 4635세대, 7330명이 대피 중이다.


월천리 주민 A 씨는 “80년 넘게 이곳에서 살았지만 이렇게 큰불은 처음”이라며 “지난겨울에 눈이 오지 않고 너무 가물었던 게 원인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 B 씨는 “대피소에 있다가 화재가 진정된 줄 알고 돌아왔는데 아직도 진행 중이라 어안이 벙벙하다”며 쪼그려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동해시 부곡동에서 만난 문 모(70) 씨는 “소방차가 한 대만 더 출동했으면 불씨를 완전히 잡을 수 있었을 텐데 물을 뜨러 간 사이 불씨가 다시 살아나 애를 먹었다”며 “날씨가 너무 건조해서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불씨가 옮겨붙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동해안 화재 피해 주민들은 순식간에 밀려오는 불길로 한순간에 인생을 송두리째 잃고 말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대부분 고령에다 농사로 생업을 이어 가던 상황이라 허탈감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화재 피해 주민이 6일 경북 울진군 울진국민체육센터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에서 진화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울진=오승현 기자

주택 전소 피해자 임시 숙소에서 기자와 만난 동해시 발한동 주민 김 모(61) 씨는 “11시 30분께 대피 문자가 와서 준비를 하는 순간 하늘에서 불씨가 지붕 위로 떨어지더니 순식간에 불이 옮겨붙었다”며 “30년 동안 살아오면서 가족과의 추억이 깃든 집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그는 이어 “급하게 나오느라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몸만 겨우 피했는데 빨리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져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호소했다.


동해시 만우동 주민 최 모(69) 씨는 불에 탄 집과 비닐하우스를 바라보며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도 잘 이겨 내 왔는데 이번 일로 삶의 의욕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며 “농사 일은 남는 게 얼마 없어도 ‘올해는 수확이 잘 되겠지’ 하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텨 왔다. 모든 것이 사라졌는데 나이 일흔 살을 먹고 어떻게 다시 시작하냐”며 한숨을 쉬었다.


경북 울진 피해 주민들이 모여 있는 울진국민체육센터에서 만난 남 모(88) 씨는 “지난 4일 사전투표를 마치고 집에 오는데 마을에서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의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다”며 “동갑내기인 아내가 5년째 요양원에 있는데 손자 책을 비롯해 평생 일군 재산이 모두 타 버려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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