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이 만난 사람] 조현래 원장 "콘텐츠 핵심은 인력·인프라·자금…획기적 지원해야 한류열풍 지속"

[서경이 만난 사람] 조현래 한국콘텐츠진흥원장
■ 대담=박태준 문화부장
'오징어게임'·'지옥' 등 정서적 갈증 풀 포인트 잡아내 성공
콘텐츠 완성도 높이려면 충분한 예산·문화 현지화도 중요
AR·VR 첨단기술 활용…한국 콘텐츠 공장 자리매김할 것

조현래 한국콘텐츠진흥원장. 이호재 기자

“콘텐츠 산업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세 가지 요소는 인력·인프라·자금입니다. 이 셋이 없으면 콘텐츠를 만들 수 없어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사업 초점도 이 세 가지 역량을 키우는 데 맞춰져 있습니다. 예전에는 콘텐츠가 많아도 유통 채널이 한정적이어서 정해진 방송 시간에 맞춰서 봐야 했지만 넷플릭스·디즈니+·티빙·웨이브 같은 국내외 플랫폼 덕에 시공간적 제약이 없어졌어요. 이 말은 우리 콘텐츠도 다른 나라의 수많은 콘텐츠와 경쟁해야 한다는 얘긴데, 그러려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완성된 콘텐츠를 생산해야 합니다. 이는 획기적인 지원이 있어야 가능하죠. 그게 안 되면 지금의 ‘K콘텐츠’ 인기는 반짝하고 끝날 수 있습니다.”


‘K팝’에 이어 명실상부한 ‘K콘텐츠’의 시대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K팝 아이돌 가수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팬덤을 이끄는 게 더는 생소하지 않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등 해외 영화제를 휩쓸고 ‘오징어 게임’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의 시리즈물은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무대로 글로벌 인기 순위 1위를 달리는 세상에 산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조사를 보면 지난해 전 세계 한류 팬은 1억 5660만 명으로 10년 만에 17배가 늘었다.


이 같은 콘텐츠 산업의 성장에는 정부의 지원도 한몫을 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지만 콘텐츠 산업 지원 기관으로서 위상이 관련 종사자들에게는 상당하다. 지난 4일 서울 중구 콘텐츠코리아랩(CKL) 기업지원센터에서 만난 조현래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은 K콘텐츠의 인기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기관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었다.





조현래 한국콘텐츠진흥원장. 이호재 기자


국내에서 콘텐츠 산업은 대표적인 성장 산업 중 하나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비록 영화·대중음악 등 일부 분야가 코로나19 사태로 큰 타격을 입었지만 드라마·웹툰·애니메이션 등 상당수의 분야는 꿋꿋하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콘텐츠 산업 전체 매출은 전년 대비 6.6% 늘어난 133조 6000억 원을 기록했으며 5년 전과 비교하면 25.8%나 성장했다. 이뿐만 아니라 콘텐츠 산업의 발전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도 엄청나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콘텐츠 산업에서 매출이 100달러 발생하면 뷰티·패션 등 관련 소비재 산업에서 나타나는 매출이 248달러라고 분석한 바 있다.


콘텐츠 산업 지원 기관의 수장으로서 조 원장은 K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고 있을까. 그는 “이용자들에게 뭔가 시대에 맞는 메시지나 정서를 채워줄 수 있는 콘텐츠의 내용과 작품의 완성도가 같이 가고 있는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코로나19 사태로 콘텐츠 소비 수요가 늘어난 점도 있지만 조 원장은 더 근원적인 이유를 ‘정보화’에서 찾았다. 스마트폰 등의 발달이 대화의 방식도 바꾸는 시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채워지지 않는 정서적인 갈증을 메우려 콘텐츠를 찾는다. 여기에 K콘텐츠가 적절한 선택지가 됐다는 게 조 원장의 분석이다. 사람들이 각자 영화나 드라마·웹툰이나 책·공연 등을 보는 이유 중 하나는 스스로에게 위안·힐링을 주기 때문인데 국내 콘텐츠 제작자들이 그 포인트를 잘 잡아낸다는 것이다. 또한 시장에서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 웹툰·웹소설의 영상화도 한몫을 했다.


그런 콘텐츠 창작자들을 적절하게 밀어주는 게 콘진원의 역할이며 콘텐츠 산업에 필요한 인력·인프라·자금 지원이 사업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그는 “격변의 시대에 진화하는 콘텐츠들이 새로운 실험을 지속하고, 이용자들에게 안정적으로 닿기 위한 통로를 제공하는 게 콘진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한 사례로 지난해 글로벌 OTT 시장을 호령한 ‘오징어 게임’은 콘진원이 대전에 마련한 ‘스튜디오 큐브’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축구장 1면 크기, 최대 높이 9m에 이르는 대형 스튜디오에 세트장을 지은 덕에 ‘오징어 게임’은 압도적 미장센으로 글로벌 시청자들을 매료시킬 수 있었다.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스튜디오 같은 인프라를 직접 소유하고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제공하는 지원을 한 것이다.



조현래 한국콘텐츠진흥원장. 이호재 기자

“국내 최대 규모의 스튜디오가 바로 ‘스튜디오 큐브’인데요. 만약에 그곳처럼 대규모 세트 제작이 가능한 실내 촬영 공간이 없었다면 ‘오징어 게임’ 같은 시도가 가능했을까 생각이 드는 거죠.”


콘텐츠 각 분야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도 벌이고 있다. 일종의 도제식 멘토링 프로그램인 ‘콘텐츠 창의인재동반사업’이 대표적으로, 아이디어 기획부터 콘텐츠 제작까지 전 과정 프로그램을 창작지원금과 함께 제공한다. 조 원장은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업계에서 계속 일하는 비율이 74%에 이른다”고 말했다. 중소 제작사에 제작비를 일부 지원해주는 사업도 있다. 조 원장은 “상환 조건 없이 제작비를 지원하는데, 좋은 콘텐츠를 많이 만드는 게 자금 회수보다 더 중요하다”며 “경쟁률이 10 대 1에 이를 정도로 매우 높다”고 전했다.


최근과 같은 한류의 인기를 지속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콘텐츠 생산에 필요한 충분한 자금이다. 조 원장은 직접 현장을 접한 후 예산 증액의 필요를 절감했다고 한다. 그는 “넷플릭스가 올해 한국 영상 콘텐츠에 투자하는 규모가 8000억 원가량으로 추산된다”며 “반면 올해 콘진원 전체 예산이 5477억 원인데, 콘텐츠 산업 전반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임을 감안하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단적으로 콘진원의 올해 애니메이션 분야 전체 지원금 160억 원은 ‘오징어 게임’ 제작비인 245억 원보다도 적다.


조 원장은 또 K콘텐츠의 지속 가능을 위해서는 적절한 현지화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콘텐츠는 문화이기 때문에 현지 문화에 녹아들지 못하는 콘텐츠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운을 뗐다. 이를테면 이슬람 문화권에서 돼지고기를 먹는 장면을 사용하지 않는 식이다. 그는 “오프라인 제품은 시공간적 한계가 있지만 콘텐츠는 인터넷만 깔려 있으면 어느 나라라도 들어갈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콘텐츠는 각 나라에 필요한 맞춤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지원하고자 8개국에 해외비즈니스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좀 더 늘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조 원장은 “단기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30개국에 설치한 해외문화원과 연계할 수 있다면 지속 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 한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조현래 한국콘텐츠진흥원장. 이호재 기자

조 원장은 “K콘텐츠는 지속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이렇게 발전하게 되면 한국이 콘텐츠 공장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디즈니+ 등 글로벌 OTT 업체들이 아시아 시장 공략을 위한 콘텐츠 전진기지로서 한국에 적극 투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가 그러면서 예로 든 것은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등을 활용한 이른바 ‘실감 콘텐츠’다. 이 콘텐츠에는 첨단 기술을 활용해야 하는데다 강한 현실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아야 해 많은 비용이 든다. 그는 “이미 관광 전시회만 가도 실감나게 지역을 보여주기 위해 실감 콘텐츠를 이용할 정도로 확산됐다”며 “우리의 기술이 뛰어나다면 해외로도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콘진원은 지난달 경복궁·광화문광장 일대에 광화문 문화유산을 테마로 한 일련의 실감 콘텐츠 시리즈 ‘광화시대’를 개장한 바 있다. 조 원장은 “‘광화시대’가 콘텐츠 기업들에는 제작 역량을 제고할 기회를, 국민들에게는 새로운 실감 콘텐츠의 체험 기회를 줄 것”이라며 “그만큼 산업의 역량과 새로운 콘텐츠 수요를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콘진원은 지난해부터 콘텐츠 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확대에도 신경 쓰고 있다. 지원 사업의 심사 기준에도 일자리 창출, 지역 균형, 사회적 기업, 종사자 권익 보호 등의 지표를 신설했으며 지난해 하반기에 ESG를 알리는 콘텐츠 캠페인도 진행했다. 올해는 본격적으로 ESG 관련 사업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조 원장은 “이미 콘텐츠 산업 역시 제작 과정에서 친환경적 방식을 도입하고 지역 발전에 기여할 뿐 아니라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등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ESG의 내재화를 요구받고 있다”며 “이미 많은 기업들이 구체적 계획을 세우고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He is… △1966년 경상남도 사천 △경남 진주 동명고 △고려대 행정학과 △KDI 국제정책대학원 공공정책학 석사 △행정고시(36회)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정책국장 △2019년 문체부 관광산업정책관 △2020년 문체부 국민소통실장 △2021년 문체부 종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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