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코퍼, 車 수출 스톱…조선사, 수천억대 평가손실 떠안을 판

■韓기업, 러 사업 직격탄
경제제재 여파 상용차 선적 중단
러서 '8조 수주' 따낸 조선업계도
스위프트 제제에 대금 결제 막막
러시아에 생산기지 둔 삼성·LG
부품공급 차질땐 공장가동 중단
갤S22 러 추가출시 무기한 연기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에 국내 기업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물류 중단, 금융망 퇴출 등 서방국가들의 러시아 경제제재가 전방위로 진행되면서 현대코퍼레이션(011760)은 러시아로 수출하던 승용차와 상용차의 선적을 중단했다. 러시아에서 8조 원 규모의 선박을 수주한 조선사들은 러시아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퇴출로 선박 인도 대금을 받을 길이 막막해졌다. 최악의 경우 선박 건조를 마치고도 대금을 지급받지 못해 악성 재고를 떠안아야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매 분기 수천억 원대의 회계상 평가손실을 반영해야 한다. 삼성전자(005930)는 스마트폰 신제품인 갤럭시S22의 러시아 출시 행사도 무기한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6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코퍼레이션은 국내 승용차와 상용차를 러시아로 수출하던 사업을 잠정 중단했다. 그간 현대코퍼레이션은 매년 수백 대의 국내 완성차를 러시아로 수출해왔다.


현대코퍼레이션이 대(對)러시아 수출을 중단한 것은 SWIFT 퇴출과 해상 물류 차질 때문이다. 상사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커지면서 국내 상사 업계를 중심으로 리스크를 줄이는 작업이 진행됐다”며 “대금 지급이 보장되지 않으면 수출을 하지 않는 등 신규 거래를 엄격히 제한했는데 서방국가의 대러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수출을 완전히 중단하는 업체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선 업계는 SWIFT 제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러시아가 수주 대금을 제때 지불하지 못할 경우 ‘제2의 드릴십 사태’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중공업(010140)과 대우조선해양(042660)은 지난 2010년대 초반 조선업 호황기 때 대규모 드릴십 수주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 유가 하락이 겹치며 발주처의 파산 및 인도 거부로 드릴십 재고를 떠안게 됐다. 드릴십은 분기당 유지 관리비로만 100억 원이 드는 데다 감가상각까지 겹쳐 재무구조 악화의 주범으로 지적받았다.


한국조선해양(009540)·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가 2020년 이후 러시아에서 수주한 선박 규모는 총 7조 7800억 원에 달한다. 한국조선해양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3척(7200억 원), 대우조선해양은 LNG 운반선 3척(7200억 원)과 1조 원가량의 LNG 설비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중공업은 조선 3사 중 러시아와 맺은 계약 규모가 가장 크다. LNG 운반선 1척(2400억 원)과 쇄빙 LNG선 건조를 위한 5조 1000억 원대의 설비 공급 계약을 맺었다.


조선 업계는 선수금을 받은 후 각 건조 단계에 따라 대금을 지급받아온 만큼 당장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선박 건조를 마치고 인도 시 남은 대금을 받는 단계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SWIFT 제재로 자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선 업계의 한 관계자는 “SWIFT 제재가 장기화할 경우 선박 인도가 불발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며 “결국 조선사가 재고를 떠안아야 하는데 이 경우 유지 보수비 및 감가상각비까지 분기당 수천억 원대의 회계상 평가손실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현지에 생산 거점을 둔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물류난에 직격탄을 맞았다. 글로벌 주요 선사들이 러시아행 운항과 선적을 중단하면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생산 기지를 둔 현대차(005380)그룹은 물류 차질에 따른 반도체 수급난으로 지난 1일부터 8일까지 공장 가동을 중단한다. 이달 생산량도 절반가량 줄일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선사들의 선적 중단으로 러시아 수출길이 막혔다. 삼성전자의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공장은 TV를 생산 중인데 아직까지 공장 가동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쟁사인 애플과 인텔의 러시아 현지 영업 중단 결정도 삼성전자의 고민을 깊게 하는 요인이다. 대러 경제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 글로벌 소비자들의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를 오가는 하늘길 역시 잠시 막힌다. 대한항공은 모스크바 노선 운항을 5일부터 오는 18일까지 2주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소재 항공기 급유 회사로부터 모스크바 공항에서의 급유가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대한항공은 여객편의 경우 결항 조치를, 화물편은 모스크바를 경유하지 않는 방식으로 운항할 계획이다. 우크라이나에서 곡물 터미널을 보유한 포스코인터내셔널(047050)의 경우 현재 운영을 중단한 상황이다. 재산상 피해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식품 업계도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러시아에 공장 2곳을 운영 중인 오리온은 3개월 치 원재료를 확보해뒀지만 만일의 사태에는 중국 법인에서 물자를 조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롯데칠성음료는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제품을 수출하는 만큼 현재까지는 큰 차질이 없다는 입장이다. 롯데칠성음료의 한 관계자는 “현재까지 수출에 어려움이 없지만 정세 불안정 심화,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인한 경기 침체로 러시아 매출 악화가 우려되는 만큼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종갑·강해령·박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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