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전기차 선점을 놓고 치열한 기술 경쟁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한양대와 LG화학이 배터리 핵심 기술에 대해 수백억 원 규모의 기술이전 협약을 체결해 주목된다. 배터리 기술은 지난해 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육성하기로 한 10대 국가전략기술 중 하나다. 지난해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전년보다 두 배가량 커지는 등 급성장세다. 특히 국내 대학의 전체 기술이전료가 연 1000억 원가량에 그치는 상황에서 한 대학이 기업에서 수백억 원의 기술이전료를 받은 것은 전례가 없는 획기적인 일이다. 대학의 연구개발(R&D) 투자 회수율이 겨우 1.5%대에 그치는 상황에서 이번 산학 협력이 롤모델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국내 대학은 기술이전조직(TLO)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대기업과의 산학 협력 조건도 동등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며 “차기 정부에서는 산학 협력의 혁신을 위한 일대 패러다임 혁신이 요구된다”고 역설했다.

◇최대 규모 기술이전, 국내 산학협력사 새 이정표=6일 업계와 학계에 따르면 한양대가 최근 2차전지 배터리 양극재 소재 특허 40여 건을 LG화학에 이전하고 공동 R&D와 인력 양성에 나서기로 한 것은 국내 산학 협력사에서 이정표로 꼽힐 만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한양대는 연평균 20억~30억 원대의 기술이전을 하다 이번에 국내 대학 사상 최대 규모의 기술이전 ‘잭팟’을 터트리게 됐다. 이번 배터리 기술은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가 이끄는 ‘한양대 에너지 저장 및 변환소재 연구실’이 개발했다. 한양대는 그동안 반도체 증착 공정(전형탁 교수), 3차원 플래시 메모리(송윤흡 교수), 폐섬유화치료제 특허 등의 기술이전을 추진하며 산학 협력에 공을 들여오다가 이번에 그야말로 ‘초대박’을 냈다. 배터리 특허 이전을 주도한 하성규 전 한양대 산학협력단장은 “이번 기술이전은 산학 협력사에 한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 될 것”이라며 “기술 보국, 실용 학풍의 한양대가 배터리 등 에너지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 것이 재차 부각되고 국내 대학의 산학 협력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LG화학은 한중일 간 배터리 전쟁 속에서 핵심 기술 경쟁력 확대에 나설 수 있게 됐다. 국제 기술 경쟁이 치열한 하이니켈 양극재 기술에서 앞서면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높여 1회 충전 거리와 수명을 늘리고 원가 절감도 꾀할 수 있다. 지난해 전기차용 배터리 업체의 시장점유율(SNE리서치 조사)을 보면 중국 CATL(32.6%), LG에너지솔루션(20.3%), 일본 파나소닉(12.2%), 중국 BYD(8.8%), SK온(5,6%), 삼성SDI(4.5%) 등이었다. LG화학 관계자는 “이르면 내년부터 이 기술을 상업화할 경우 10~20%의 주행거리 향상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시가총액 100조 원)의 지분을 82%가량 보유하고 있는데, 이번 특허 인수를 계기로 물적 분할에 따른 부정적 여파에서 나름대로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LG화학은 양극재 등 2차전지 배터리 소재를 비롯해 친환경 소재, 글로벌 신약까지 3대 신사업 매출을 현재 3조 원대에서 오는 2030년 30조 원으로 키울 계획이다. LG화학은 2006년 세계 최초로 니켈·코발트·망간(NCM) 양극재를 양산했고, 안정성 강화 분리막과 탄소나노튜브, 방열접착제, 음극바인더 등 부가 소재들도 대폭 키우고 있다.

◇국내 대학 총 기술이전료, 미 대학 1곳에도 못미쳐=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우리 대학의 전체 기술료는 2017년 774억 원, 2018년 870억 원, 2019년 1019억 원으로 늘다가 2020년 1005억 원으로 전년 대비 1.4% 감소했다. 대학별로는 KAIST가 가장 많지만 연 100억 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고 서울대조차 연 60억~70억 원에 그친다. 이에 따라 대학의 R&D 투자 회수율도 2019년 1.73%에서 2020년 1.56%로 감소했다. 대학의 연구비는 2019년 6조 6180억 원에서 2020년 7조 1860억 원으로 늘었으나 기술이전료는 외려 뒷걸음질 친 것이다. 대학은 기술이전료 중 연구자 보상비로 평균 56.3%, 대학 또는 산학협력단 운영비에 21%를 각각 썼다. 여기에 특허 출원·유지료까지 감안하면 기술이전료를 벌어도 실질적인 수입은 마이너스다.

반면 미국대학기술관리자협회(AUTM)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하버드대 소속 매사추세츠종합병원(3487억 원), 노스웨스턴대(3047억 원), 암센터(1876억 원), 펜실베이니아대(1326억 원), 플로리다대(1105억 원) 등 8개 미국 대학의 기술이전료 수입이 각각 국내 대학 전체를 능가했다. 오린 허스코비츠 컬럼비아대 지식재산권(IP) 수석부사장 겸 컬럼비아기술벤처센터장은 “컬럼비아대는 시장에서 필요한 연구를 하기 때문에 특허를 출원하면 60%가량은 기업에 기술이전하는데 대부분 등록도 되기 전에 이뤄진다”고 전했다.

◇차기정권, 科技 패권전쟁 속 대학 기술사업화 적극 나서야=미중 등 글로벌 과학기술 패권 전쟁 시대에 대학이 전략 기술 개발과 미래 성장 동력을 키우는 데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주요 대선 후보들이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기는 했으나 ‘국가 R&D 혁신’ ‘탄소 제로’ ‘우주’ 등의 정책에서 효과적인 추진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 기관의 기술 사업화 의지도 표명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차기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으로 당선된 이태식 국제우주탐사연구원장은 “미국과 중국은 물론 일본도 경제·안보와 과학기술을 한 묶음으로 다루고 있다”며 “새 정부에서는 과학기술을 국가 핵심 어젠다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우승 한양대 총장은 “미국 등 해외 대학들은 교육과 연구 혁신은 물론 산학 벤처밸리 조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차기 정권은 기업가정신을 발휘하는 대학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렸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도 “국내 산학연이 기대만큼 역할이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며 “이번 한양대의 최대 규모 기술이전을 계기로 한국 대학에서 기업가정신과 기술 사업화 고취로 이어졌으면 한다”고 힘줘 말했다. 로버트 닐 에버하트 스탠퍼드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수원이었던 실리콘밸리의 역사를 예로 들며 “대학이 교육·연구 혁신을 꾀하고 TLO를 강화하면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