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이혁 "인생 희로애락 담은 쇼팽의 선율 느껴보세요"

작년 쇼팽콩쿠르 결선 진출 활약
8일부터 대전 시작으로 리사이틀
쇼팽 피아노소나타 3번 등 선봬
과한 해석 경계…작곡자 의도 충실

피아니스트 이혁/에투알클래식

피아니스트 이혁(사진)은 지난해 쇼팽 콩쿠르를 준비하며 폴란드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쇼팽 협회 지정 악보인 ‘에키에르’ 판에는 작품마다 쇼팽이 과거 그 곡과 관련해 주고받은 편지나 이야기 가 정리돼 있는데, 이를 꼼꼼히 공부해 작곡가의 의도를 최대한 곡에 반영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성실한 학습에 감각적인 연주가 더해져 그는 제18회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결선에 진출한 데 이어 쇼팽 작품으로만 진행된 프랑스 ‘아니마토 콩쿠르’(2021)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과한 해석으로 작곡가의 곡을 ‘연주자의 곡’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늘 경계하고 있어요. 작곡가의 작품을 최대한 그분들이 원하는 의도에 가깝게 오늘의 관객에게 전달해주고 싶습니다.” 자기 이름 앞에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면 “작곡가의 대변인”이었으면 한다는 22세의 젊은 연주자는 오는 8일 대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대구, 부산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지난달 25일 입국해 공연 준비에 한창인 그를 7일 전화 통화로 만났다.


이혁이 이번 리사이틀에서 ‘대변’할 작곡가는 라흐마니노프와 스트라빈스키, 그리고 쇼팽(16일 서울 공연 기준)이다. 13세부터 러시아에서 생활하며 현재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 재학 중인 그는 공연 전반부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과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 ‘페트루슈카’ 중 3개 악장을 연주하며 정통 러시안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은 원곡(1913)과 이를 편곡(1931)한 두 개 버전이 있는데, 이혁은 두 번째 버전을 연주한다. “라흐마니노프는 쇼팽의 소나타 2번을 ‘20분 안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았다’며 무척 좋아했대요. 그런데 자기 작품은 그 이상(25분)이 걸린다며 많은 부분을 잘라 내 20분의 새 버전을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작곡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가 좀 더 직관적으로 느껴지기에 이혁 역시 이 버전을 선호한다고 한다.



피아니스트 이혁/에투알클래식

공연 후반부는 쇼팽으로 장식한다.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 중 ‘우리 손을 맞잡고’에 의한 변주곡에 이어 피아노 소나타 3번을 연주한다. 두 곡은 쇼팽콩쿠르 3차 예선과 아니마토 콩쿠르 준결승 때 작품이다. 이혁은 “쇼팽 작품 중에서도 소나타 장르는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기승전결을 갖춘 한 편의 드라마처럼 담아내기에 더 끌린다”며 “쇼팽 콩쿠르 당시 청중들이 많이 좋아해 준 곡이라 한국 관객들에게 직접 들려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변주곡 역시 “자주 연주되지 않는 작품 중 하나인데, 곳곳에서 톡톡 튀는 모차르트와 젊은 쇼팽의 순수한 면이 어우러진다”고 설명했다.


올해도 공연으로 숨 가쁜 1년이 예정돼 있다. 한국에서는 3~4월 리사이틀과 협연 무대에 이어 8월 금호아트홀과 롯데콘서트홀 기획 공연으로 관객과 만난다. 해외에서는 폴란드와 러시아, 프랑스, 일본 등을 돌며 연주를 펼친다. 이혁은 “쇼팽 콩쿠르 이후 예브게니 키신, 다닐 트리포노프 등이 소속된 폴란드 매니지먼트사와 계약하게 돼 폴란드에서의 연주 기회가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최근 전 세계인의 이목이 쏠린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8년 넘게 러시아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있고, 우크라이나에서도 공연하며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그렇기에 2022년 벌어진 비극이 더욱 아프게 느껴진다. 주요 국가들의 러시아 고립 조치 속에 이혁의 현지 일상과 공연 및 공연을 위한 이동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그는 “다행히 우크라이나에 있는 친구들로부터 안전하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안도하면서도 “그저 이 상황이 하루빨리 끝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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