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사고 기업들이 작업 중지 명령 전면 해제 신청을 단 한 건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혐의를 인정할 경우 최고경영자(CEO) 형사처벌에 대한 우려가 큰 데다 사고를 수사 중인 고용노동부에 ‘괘씸죄’로 걸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산업재해 발생 기업들이 곧 작업 중지 해제를 요청했던 예년과는 분명 달라진 풍경이다. 기업들의 작업 중지 기간이 장기화하면 해당 기업뿐 아니라 관련 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8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1월 27일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법 적용(법 위반 혐의 수사 포함)을 받은 기업 13곳은 모두 작업 중지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6일 기준 이들 기업 가운데 전면 작업 중지 해제를 신청한 기업은 없다. 빠르면 몇 주 내 신청부터 해제까지 이뤄지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작업 중지는 중대재해와 지방고용노동청장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고가 발생하면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작업 중지는 부분 중지와 전면 중지 두 가지로 시행된다. 중지 명령을 어기는 기업은 5년 이하 징역을 받을 수 있는 처벌 조항이 있다. 이 때문에 작업 중지 명령을 어기는 기업이 드물다. 중지 명령을 받은 사업주는 시정 조치를 완료하면 고용부 장관에게 해제 요청을 한다. 요청 후에는 이행 여부를 근로감독관이 확인하고 해당 기업의 노사,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작업중지해제심의위원회를 거쳐 해제가 결정된다.
산업계에서는 기업들의 작업 중지 해제 신청이 전무한 상황이 중대재해법 시행과 관련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부 안팎에서는 기업들이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산업안전보건법과 달리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등 형사처벌 수위가 높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기업들의 작업 중지 해제 신청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산안법 적용 당시에는 처벌 수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위반 혐의를 인정하고 작업 중지 조치를 조속히 해제하고는 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를 인정할 경우 대표가 처벌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에 국민적인 관심이 쏠린 점도 기업들의 부담이다. 중대재해법 적용 사고가 발생한 한 기업 관계자는 “작업 해제를 신청하면 수사 중인 고용부에 괘씸죄로 걸릴 것 같아 엄두를 못 내고 있다”며 “작업 중지 해제를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질타를 받아왔는데 상황이 더 어려워질 줄은 예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작업 중지 제도는 중지 기간이 법으로 정해지지 않아 노사의 입장이 크게 엇갈린 사안이다. 경영계는 작업 중지가 장기화하면 해당 기업뿐 아니라 관련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 지난해 한 철강 기업의 작업 중지 장기화로 철근 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건설 현장의 어려움으로 이어진 게 대표적인 사례다. 작업 중지 해제 신청 전과 해제 이후 고용부 근로감독관의 실태 점검이 이뤄진다. 노동계는 기업의 재발 방지 대책이 부족한 상황에서 작업 중지 해제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해왔다. 2019년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서 작업 중지 해제를 신청하면 4일 이내에 위원회를 열기로 한 법 시행을 두고도 노동계는 졸속 해제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고용부는 기업들이 중대재해법과 작업 중지 제도를 연관 짓는 시각에 대해 과도하다고 해명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폭발 사고로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 수사를 받는) 여천NCC의 경우 부분 작업 중지 해제 신청이 받아들여졌다”며 “작업 중지 해제는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