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호기심과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궁금증을 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배우 서예화에게는 연기가 곧 호기심이다. 궁금증을 갖고 작품을 마주하고, 캐릭터에 대해 질문하면서 완성해 나갈 때 가장 큰 에너지가 느낀다. 서예화가 '꽃 피면 달 생각하고'에 도전한 이유도 사극이라는 장르가 주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서예화가 처음으로 사극에 도전한 작품인 KBS2 월화드라마 '꽃 피면 달 생각하고'(극본 김아록/연출 황인혁/이하 '꽃달')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금주령의 시대, 밀주꾼을 단속하는 원칙주의 감찰 남영(유승호)과 술을 빚어 인생을 바꿔보려는 밀주꾼 여인 강로서(이혜리)의 이야기. 서예화는 강로서와 함께 술을 빚어 장사를 벌이는 혜민서 수련 의녀 천금을 연기했다.
"이번 작품이 저에게는 처음으로 오디션이 아닌 저라는 배우를 필요로 해주셨던 작품이라 정말 영광스러웠어요. 나이 때문에 '천금이라는 인물을 내가 잘 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많았는데, 그런 저를 감독님께서 많이 다독여주셨어요. 또 제가 고민되었던 부분들도 진심으로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주신 덕분에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었죠. 사극이라는 양식의 특수성으로 스스로 위안을 얻기도 했는데, '그 당시의 스무 살이면 지금에 있어 삼십 대 정도 되겠다'하면서요."(웃음)
낯선 장르로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그에서는 설렘이었다. 낯섦을 잘 마주해 필모그래피에 새로운 페이지를 열고자 하는 마음으로 '꽃달'과 마주했고, 그 과정은 즐거웠다.
"아무래도 퓨전사극이기도 하고 천금이 신분이 높은 인물은 아니다 보니 말투나 행동에 있어서는 보다 자유로웠어요. 그래서 천금이라는 인물을 잘 표현하기 위해 더 신경 썼죠."
"저는 이번 작품을 촬영하면서 매 순간 자연과 함께했어요. 현대극과 달리 사극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이었죠. 사계절의 자연을 겪으며 힐링하는 기분으로 촬영을 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촬영 에피소드들이 다 자연과 연관돼 있었어요. 개구리 울음소리 때문에 스태프들이 애먹으셨던 적도 있었거든요. 그런 추억들이 저에게는 낯설면서도 설렜던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관노로 태어난 천금은 글자를 안다는 이유로 의녀로 차출된 인물. 천금은 뒷돈을 받고 진료 순서를 바꿔주고, 좋은 약재를 빼돌려서 팔아먹는 등으로 용돈벌이를 한다. 좋게 얘기하면 생활력이 뛰어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도덕관념이 조금 부실하다. 그런 그가 강로서를 만나 술을 판매하며 자신의 삶을 더욱 진취적으로 꾸리게 된다.
"천금이는 그 시대에 아주 천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꿈이 있는 인물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가치관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로서 덕분이었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로서와 함께 큰 꿈을 꾸고 나아가는 게 천금의 삶의 전부였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 시대에 해서는 안 될 것들, 가령 신분의 차이와 같은 부분을 명확히 인지하면서도 천금 본인의 삶을 우선시하려고 했어요. 눈앞에 보이는 것, 들리는 것, 해결해야 하는 것들 앞에서 주저하지 않는 천금의 모습들이 그런 거였죠. 금기를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더 주저하지 않는 인물처럼 보이고 싶었어요."
강로서와의 신분을 뛰어넘은 우정도 천금의 성장 서사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극 초반 강로서와 천금은 그저 비즈니스 파트너였으나 한양 최대의 밀주 업자 심헌(문유강)에게 꼬리를 잡힌 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등의 위기를 겪으며 진정한 우정을 나눴다. 특히 강로서가 그동안 번 돈으로 면천(免賤) 시켜주자 "우리 반반하기로 했잖아요. 돈도 반, 고생도 반이니까 난 아씨랑 같이 있을 거예요"라고 한 천금의 대사는 깊어진 우정과 인연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강로서와 천금의 우정만큼, 서예화와 이혜리의 우정도 깊어졌다.
"이혜리는 연기적인 부분뿐 아니라 실제 성격도 착하고 멋져서 많이 배웠어요. 이혜리와는 설정상 붙어있는 시간이 정말 많았는데, 정말 강로서와 많이 닮았어요. 진취적이고 밝고 또 그 안에 현명함이 있어요. 솔직하면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이혜리였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배우였습니다. 저도 함께 연기하면서 많이 배우고 의지했어요."(웃음)
"촬영장 분위기도 좋았어요. 돌아가면서 분위기 메이커가 됐던 것 같아요. 특히 밀벤저스(밀주 어벤저스)끼리의 호흡도 너무 즐거웠는데요. 촬영 막바지 즈음에 다 같이 밀주방에서 밥 먹는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아요. 저희가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장면이 몇 없어서 그런지 괜히 너무 좋더라고요. 서로 장난도 주고받고, 연기적인 고민도 함께하고 하면서 정말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봄부터 겨울까지, 사계절이라는 시간을 '꽃달'과 함께 보낸 서예화. 유난히 현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작품인 만큼 현장 스태프, 배우들과 함께했던 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마음 가는 작품을 끝낸 지금, 스스로를 돌아 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그동안은 제 자신을 항상 뒷전으로 생각해 왔던 것 같아요. 연기를 할 때나 제 삶에 있어서도 제 자신이 원하는 것 혹은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모른 척했던 순간들이 많았더라고요. 앞으로는 조금은 제 자신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제가 되기 위해 시간을 보낼 것 같아요."
서예화의 연기 시작은 무대였다. 그는 관객과 호흡하면서 무대가 주는 즐거움에 매료돼 2011년 연극 '사랑을 이루어 드립니다'로 데뷔한 서예화는 이후 연극 '온에어 초콜릿', '새끼손가락', '러브 액츄얼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그대와 영원히', '나와 할아버지'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무대에 올랐다. 2018년 '무법 변호사'로 매체 연기에 넘어와 드라마 '인간수업', '편의점 샛별이', '빈센조' 등에 출연하면서도 연극 무대를 놓지 않았다.
"무대에서는 연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배우들과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함께 한곳을 향해 달려가는 즐거움이 있고, 브라운관 연기는 장면 장면 스태프, 배우들의 열띤 집중을 받으며 다른 색깔의 에너지를 주고받는다는 게 서로 다르지만 큰 매력인 것 같아요. 각 연기 별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해요."
서예화가 연극과 매체를 오가며 연기 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는 배우 진선규의 선한 영향력 덕이었다. 서예화가 연기를 처음 시작한 것도 진선규의 공연을 보면서부터였다. 그는 진선규의 공연을 본 후 처음으로 연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고, 지금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진선규 선배님은 선한 영향력이 작품과 현장에 얼마나 따스한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지 직접 보여주시는 분이세요. 참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어요. 연기를 할 때도, 배역을 만날 때도, 현장에 있을 때도 매 순간 진심을 다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일깨워 주시는 등대 같은 분이시거든요. 그런 지점들이 제가 연기생활을 해나가는 데에 가장 큰 에너지고요."
"제가 생각하는 연기의 매력은 끊임없이 저의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점이에요. 맡은 배역을 표현함에 있어 그 인물이 가지고 있는 서사가 궁금하고,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고민해서 만들어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거든요. 물론 함께 하는 수많은 인연들과의 호흡과 추억들도 저의 큰 원동력이에요."(웃음)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는 서예화는 도전하고 싶은 장르도 많다. 해왔던 것보다 해보지 못한 게 많은 만큼 무엇이든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중에서도 SF 장르에 출연하는 게 꿈이라고. 어렸을 때 꿈이 천체물리학자였던 그는 우주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과학 잡지를 찾아볼 정도다. 그는 연기로라도 이루지 못한 꿈을 경험해 보고 싶다고 바랐다.
"저는 어떤 뛰어난 재능을 가진 배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면 그건 호기심이 아닐까 싶어요. 그 호기심에서 작품을 마주하는 에너지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저는 대중에게 어떤 호기심이 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도 더 고민하고 계속 궁금한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배우로서 저라는 사람이 아니라 보시는 분들에게 그 배역 자체로 보인다는 건 참 감사하고 뿌듯한 일이거든요. 그래서 어떤 작품을 만나든 늘 새롭고 신선한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