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코로나19의 장기화,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대비해 은행권에 대손준비금의 추가 적립을 권고함에 따라 은행들이 8000억 원이 넘는 돈을 추가로 쌓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은 국내 은행이 8760억 원의 대손준비금을 추가 적립할 예정이라고 8일 밝혔다. 이 같은 추가 적립에 따라 지난해 말 대손충당금·대손준비금을 합친 은행권의 손실 흡수 능력 잔액은 37조6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말보다 1조 8000억 원 늘어난 수준이다. 당초 은행의 계획대로 지난해 말 기준 늘어날 대손충당금·대손준비금 순전입액(6000억 원)의 세 배 규모다. 앞서 대손충당금은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라 은행이 자체 평가해 적립한다. 충당금이 금감원의 감독 규정에 따라 명시된 대손충당금보다 적으면 은행들은 대손준비금으로 쌓아야 한다.
금감원은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 및 글로벌 통화정책 정상화 등에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은행권의 손실 흡수 능력을 더 키워야 한다고 판단했다. 금감원이 지난 1월 은행권과 간담회를 열고 3000억 원 내외로 충당금을 추가 적립하기로 의견을 모았음에도 4일 간담회에서 대손준비금 추가 적립을 권고했다. 은행별로 충당금 산출 방법의 차이가 심한 것도 대손준비금 추가 적립의 이유다. 금융 당국은 “영업 환경, 고객의 특성 등에 따라 은행마다 부실률 등을 다르게 책정하는 게 당연하나 해당 책정 기준이 적정한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손실 흡수 능력을 키우는 데 공감하면서도 혼란스럽다는 분위기다. 일부에서는 재무제표를 확정해 이미 해외 투자설명회(IR)에서도 전달했는데 다시 이사회를 열고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다 정부가 3월 종료 예정이었던 코로나 대출 만기 연장, 상환 유예를 모두 6개월 연장해놓고 이에 대한 대손준비금의 추가 적립을 유도한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정작 추가 손실 리스크를 금융 당국이 키워 놓고는 뒤처리를 은행에 또 맡기는 형국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대손충당금·대손준비금을 올해 1분기에 더 적립하라는 거면 이해할 수 있다”며 “이제 와서 지난해 말 기준에 추가 적립을 권고한 데 은행들이 불만을 나타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올해 은행이 손실 흡수 능력을 키우도록 지속적으로 유도할 방침이다. 은행이 대손충당금 산출 시 미래 전망, 대내외 경제 여건 등이 충분히 반영됐는지도 점검한다. 예상하지 못한 손실에 대응해 충분한 자기자본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가계부문 경기대응완충자본(SCCyB)도 도입한다. 경기대응완충자본이란 신용팽창 시기에 추가 자본을 적립하도록 해 과도한 신용 확대를 억제하고 신용 축소 또는 경색 때 적립된 자본을 해소해 신용 공급을 원활하게 하는 제도다.